사실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진 않는다. 불시에 떼를 지어 몰려와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 가운데 있는 주인공에 이입이 되기라도 하면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라 불쾌감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좀비를 볼 기회를 아주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잠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켜놓은 좀비 드라마를 보다가 좀비는 그저 공포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현실에 만연한 어떤 것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좀비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보통 때는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느리게 움직이지만 사람을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 달려들기 때문이다. 좀비 자신이 사람을 향하다 죽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후퇴하거나 비켜서지 않는다.
좀비는 항상 사람의 고기를 취하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고 이를 발견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존재가 바로 좀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사람의 고기를 돈이나 권력으로 치환해 보자. 돈을 취하려 온 신경을 집중하고 돈 냄새를 맡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좀비는 자신들의 개체가 아무리 많아도 자신들의 식생활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사람을 찾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을 착취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비슷해 보인다. 이제 좀비가 어떤 대상을 은유하고 있는 지 눈치를 챘을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항상 우리 같은 일반 사람을 착취하려 한다.
좀비가 사람을 공격할 때는 혼자서 달려드는 적은 거의 없다. 떼를 지어 사람을 공격한다. 그렇다고 그들은 협동하는 것은 아니다. 암사자가 쫓고 수사자가 숨통을 잡아채는 그러한 협동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목적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힘을 보태게 된다.
점차 이 은유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돈과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은 영원한 동지가 없다. 그저 이해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 뒤통수를 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한다는 목적은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힘을 합치는 모양새가 된다.
좀비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좀비에게 물리거나 특정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변해버린 것이다.
돈과 권력을 좇는 사람들도 그런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돈이나 권력에는 맛이라는 단어가 함께 따라다닌다. 다시 말해 처음엔 그들도 보통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돈맛, 권력의 맛을 보고 여기에 취해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좀비처럼.
좀비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잠깐의 접촉으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서이다. 그만큼 전염도 쉽고 치명적이다.
부동산 광풍이 불었을 때 우리는 모두 집으로 투자금을 뻥튀기하려는 대열에 동참하려 무지 애를 썼었다. 돈과 권력의 맛을 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무용담을 얘기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부추긴다. 그러다 그 맛을 조금이라도 보게 되면 전염되기에 이른다. 이는 몇 년 전 우리의 자화상이었으니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치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머리를 부수어 없애야 할 존재이다. 나의 좁은 식견에서 좀비가 사람으로 돌아가는 영화는 웜 바디스 하나뿐이었다. 그만큼 좀비가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이다.
돈과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도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TV에서 보던 사람들도 여의도로 입성하여 배지를 달게 되면 인상마저 변해버린 것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웜 바디스에서는 돌아왔으니 그들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버리지 말자. 좀비가 사람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요약해 보면 먼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단계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타자에 대한 애정이 싹터, 나중에는 이타적인 모습을 보일 때 심장에 피가 돌고 몸이 따뜻한 사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돈과 권력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다른 이들의 삶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움켜쥔 것이 얼마 만큼이고 앞으로 쥘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만 보고 산다.
이들이 보통사람으로 돌아오려면 우선 자신 보다 다른 사람에게 시선이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곧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하는 단초가 되어 이제 심장에 피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돈과 권력의 독이 서서히 빠지게 되어 다시금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너무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하나의 인생을 강요당하는 속에서 좁은 길에 서로 치여 모두가 다치고 있다. 가진 자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이를 제어하는 사회적 기제는 점점 마비되고 있다. 권좌에 있는 사람들은 왜 그 권력을 국민들이 부여했는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군림하려고만 하고 있다. 힘없는 사람들은 더욱 나락으로 빠지고 있고 못 가진 사람들은 그나마 있는 것도 빼앗기고 있다. 억울함이 있어도 하소연할 수 없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좀비에 둘러싸인 사람들처럼 말이다. 각성한 좀비는 그냥 놔둬도 사람이 될지 모르니 알아서 하라고 하자. 아직 물리지 않은 우리는 이 좀비떼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