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는 아시아의 유산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상황은 뒤죽박죽 되었다

by 노바티오Novatio
기독교는 오랫동안 지중해 지역 및 서유럽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교회 지도부의 위치 때문이었다.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의 고위 인사들은 각기 (이탈리아) 로마, (영국/잉글랜드) 캔터베리, 콘스탄티노플(*튀르키에의 수도 이스탄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초기 기독교는 모든 측면에서 아시아 적이었다. 지리적 중심지는 물론 (이스라엘) 예루살렘이었고, 예수의 탄생과 삶과 십자가 처형에 관련된 유적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본래 언어는 서아시아 사람들이 쓰던 셈어파의 하나인 아람어(*오늘날의 시리아 거주민이 사용하던 언어)였다. 기독교의 신학적인 배경과 정신적인 무대는 유대교였다.

이스라엘에 살던 시기와 이집트, 바빌론(*현대의 이라크 알힐라 지역) 포로 시절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이야기들에는 유럽인에게는 낯선 사막, 홍수, 가뭄, 기근이 등장한다. (중략)

특히 (로마) 제국 군대는 죄와 성(性, *마리아에서 예수의 홀로 탄생)과 죽음과 삶 일반에 관한 혁명적인 태도(*예수의 사망에 이은 부활)를 지닌 새 종교를, 과거부터 내려온 호전적인 가치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2세기 이후 잔인한 박해가 거듭 이어져서 기독교인들이 수천 명씩 살해되었고, 때로는 대중의 오락물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수많은 문서들이 쌓였다.

- 피터 프랭코판(Peter Frankopan) 지음, 이재황 옮김, [실크로드 세계사 (2017), 원서 제목: The Silk Roads (2015)], Page 72-73
피터 프랭코판(Peter Frankopan) 지음, 이재황 옮김, [실크로드 세계사 (2017) / Image: 인터넷서점 알라딘 화면 캡처




2025년을 1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믿음에 관하여'를 다시 생각해 본다. 2025년 12월 3일은 지난해 한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었던 비상계엄(내란) 사태 발생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개인적으로는 '종교'라는 용어를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믿으며 우러러본다'는 의미의 '신앙'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무엇을 믿고, 우러러볼지는 개개인의 자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종교의 자유)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신앙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공동체(사회) 혹은 국가 정체성과 연계되어 있다. 태국(불교)이나 이탈리아(가톨릭)는 특정 종교가 전체 시민의 일상 생활과 행동양식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 정체성과 신앙이 연계되어 있다는 의미가 정치와 종교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믿음 생활에서 요구되는 시민의 양심을 사회에서 행동으로 표출하기 위한 그 사회의 도덕성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특정 집단이 표방하는 가치관을 추종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법원을 송두리 채 파괴하고, 법정에서까지 사법 체계를 조롱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마저 무시하는 것이 '믿는 것을 우러러 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패한 공동체 거주민을 노예로 취급하여 서로 칼을 들고 싸우게 하고, 결국은 결투에서 패한 사람의 목숨마저 거두는 광경을 도박처럼 즐겼던 로마인들이었다.


로마 정권이 새로운 믿음 체계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던 특정 정치집단의 방향과는 정반대 입장에서 비천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권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 어젠다로 표방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수치심도 모르는 오늘날 한국의 특정 '신앙'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로마시대 기득권 세력이 피지배 국민들을 탄압했던 행태와 다르지 않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다수의 선한 국민들을 탄압했던 로마 제국 지배층 세력의 종말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