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anta

by 아륜

밤이 밝으면 나는 움직인다.

낡아빠진 캐럴에 취한 희생자를 달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올해는 빨간 날이 평일에 닥쳤다.

십이월 이십사일. 거리에는 차와 사람이 흘러내린다. 노동자의 구슬땀이 미끄러지듯 소비자를 처리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햄버거집에 들렀다. 이십사 시간 잠들지 않는 매장은 저녁 아홉 시에도 빠른 음악을 쏟아냈다. 앳된 아이 하나가 캡에 싸인 머리를 숙여 버거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로 묶은 갈색머리가 뒤통수에서 총총 흔들렸다. 아이에게 버거 세트를 받으면서 검은 편지봉투를 전해주었다.

“밖에 누가 전해달래요.”

봉투를 받은 아이가 산타를 믿는 일곱 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이에겐 내가 누군지 봉투를 보낸 이는 누구인지 탐구할 시간이 없었다. 정해진 레시피를 초 단위로 지키며 승객들을 크리스마스로 데려다주어야 했다.

첫 번째 손님을 대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몰래 주어야 하는데 아이의 급박한 손동작에 지나칠 수 없었다. 나머지 백이십사 명에게는 얼굴을 들키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으며 아이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검은 봉투의 금장 스티커를 떼고 금액을 확인하는 손이 바빴다.

오만 원권 두 장, 만 원짜리 두 장, 천 원 두 장, 오백 원 한 개.

십 년 전에 언니가 여기서 일할 때 누가 선물을 주었더라면 훨씬 빨리 부자가 되었을 거야.

아이는 나의 혼잣말을 듣지 못했다.

우체국에 반납하면 백 원을 돌려주는 편지봉투를 사용했다. 사람들이 무거운 지난날을 용서하고 내일을 가뿐히 맞이하기를 바랐다.


봉투에 담긴 현금은 아이의 일당을 가뿐히 넘겼다. 지친 아이가 하루쯤 쉬었으면 했다. 내가 선사한 휴일에는 안 해도 될 말을 안 하고 안 해도 될 행동을 하지 않고 안 봐도 될 것을 안 보고 안 들어도 될 것을 듣지 않도록. 당신에게 안 해도 될 자유가 생기면 좋을 것이다.

일 년에 천오백 정도는 기분 삼아 지출할 수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나와서 오래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올해까지는 안 걸리는 게 목표다.

사람들이 기분전환에 지출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크다. 살림이 넉넉해지면 즉시 기분을 바꿔야 할 정도로 기분 상하는 때가 줄어든다. 빈익빈부익부는 기분에도 적용된다. 내가 쓰고 남은 기분전환비를 돌려주는 것뿐이니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패스트푸드를 삼켰다. 일 년에 하루만 허용하는 나쁜 음식. 오늘의 나에게 보상으로 주었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모차를 끄는 아빠 옆에서 엄마 손을 잡은 아이의 소리였다. 감염된 아이들이 보채는 사이 부모의 주름이 구부러졌다. 애들 엄마의 에코백이 모유를 기다리는 아기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보행자의 행렬을 따라가며 가방에 살짝 봉투를 흘렸다. 아이가 조금 더 울면 엄마가 무엇이든 나오는 가방을 열어 오늘의 현금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언덕 너머 탄일종이 울렸다. 그곳으로 성직자가 출근했다. 자줏빛 은혜를 충전하고 그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먼길을 떠났다. 성소에 엎드려 두 손을 모은 그 또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성직자는 고개를 들어 절대자로 가는 기도를 열고 신도의 호흡을 도왔다. 열 오른 문 뒤에서 나의 세 번째 봉투를 꺼냈다. 검은 봉투 안의 돈을 꺼내 기관이 마련한 주머니에 넣었다.


비탈진 땅을 내려오며 오늘밤 태어날 생명을 생각했다. 나와 같은 생일을 가진 수많은 이들에게 마음속 축하를 보냈다.

번화한 거리로 돌아오니 학원과 독서실에서 학생들이 쏟아졌다. 나태한 소음이 자정까지 퍼지는 동안 수험생은 견뎠다. 여럿이 모여 있는 아이들을 지나 혼자 이어폰을 꽂고 자판기에서 메뉴를 고르는 아이 쪽으로 갔다. 아이는 파란 쓰레기통의 납작한 뚜껑 위에 동전지갑을 올려두고 코코아 버튼을 눌렀다. 따뜻한 코코아가 만들어지는 동안 아이는 쭈그려 앉아 작은 출구를 바라봤다. 지갑의 지퍼가 열려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비밀의 보너스를 꺼내 아이의 지갑에 슬쩍 넣고 뒤돌아 걸었다.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바람이 찼다. 검은 코트 차림에 목이 허전했다. 작년까지는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우편함에 하나씩 봉투를 넣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다른 세대 몫까지 가져가는 바람에 배달사고가 이어졌다. 번거롭더라도 직접 전해주는 편이 나았다.

신호등 빨간불이 꺼지고 초록불이 켜졌다. 성탄의 보색은 불친절하게 깜빡였다. 아무도 모르는 무음의 증상. 색각이상자는 홀로 피로했다.


건넛마을의 노래가 징글징글하다. 듣기 싫은 음악은 그만 꺼도 된다. 눈물이 나면 마음껏 울고. 우리는 산타를 잃은 지 오래다. 함부로 내린 축복은 거절한다. 근무 중인 신에게 바라는 한 가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만은 막아주시길. 길 미끄럽다. 나의 구둣발은 썰매가 아니랍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북 치고 장구 치는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줘야 하나. 내가 유일하게 참는 가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이다.


해 뜨기 전에 배송 마치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과음한 루돌프가 시야를 막았다. 저들이 저리 안달 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제를 잊지 못하고 내일을 떠올리지 않는 말들이 흩어졌다. 오늘은 나와 관계없이 흘렀다.


내가 준비한 봉투는 두꺼운 재질의 종이라 조금 구겨져도 내용물은 안전했다. 고독에 떨고 과로에 절고 무례에 다친 사람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잘 모르는 남의 생일파티에 불려가지 말고 자신을 넉넉히 위로하길 바라며 마련했다.


골목의 다세대 주택가로 들어왔다. 쿵쿵 발소리가 들려 모퉁이를 돌자 면도를 거르고 새빨간 의상에 파묻힌 알바가 커다란 눈뭉치를 들고 뛰어다녔다. 그의 뒷주머니에 몰래 봉투를 찔러 넣었다. 나의 선물이 그의 퇴근을 앞당기길 기대하면서.






그림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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