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나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후원자가 나의 후원 사실을 자랑하고는 한정판을 비싸게 팔아치우는 장면을 상상한다고 썼다. 그런 생각을 나는 터무니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려보고 운이 좋으면 이루어지기도 한다. 2018년 여름에 3년 목표를 세웠다. 목표라 했지만 간단히 끄적거린 메모에 불과했다. 그중 책 만들기가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라 2021년 상반기까지 이루겠다고 적었다. 날짜는 명확했지만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짧은 글만 겨우 쓰던 때라 소설책을 상상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쓴 대로 되었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글로 적고 그게 마치 가능하단 듯이 주변에 말하고 다닌다.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낯설게 보였던 꿈이 나에게는 익숙해진다. 마치 가능하단 듯이.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지만 모호한 생각을 문장으로 정확히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어 말할 때 나는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가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9년 가을이었다. 갑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대한민국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될 거예요! 나는 취해서 그런 말을 뱉었다. 앞에 있던 사람은 네, 누구누구 씨, 꼭 대한민국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세요,라고 했다. 하루키가 되겠다는 마음은 이렇다. 쉽게 읽히면서 매력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이름만으로 전율하는 독자들이 많이 있고 일단 책을 사 주기 때문에 글 쓸 시간을 번다. 읽으면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행복해지는 그런 글을 쓰는 존재가 되고 싶단 뜻이다. 내용은 행복하지 않아도 이야기에 몰입하는 동안 행복해지고 멈춘 심장이 뛰고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글.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그 말을 하고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어느 독자와 어느 출판인에게 하루키 느낌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스타일과 나의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열심히 읽은 만큼 영향을 받았을 거고 그만큼 재밌고 몰입이 잘 되는 글이라 하니 좋았다.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그의 향기가 난다는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쓰고 누군가는 흥미를 느끼며 읽는다.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다. 글을 보이면서부터 이미 이루었지만 책을 만든 후에는 그간의 시간을 증명하게 되었고 판매도 이루어졌다. 그럼 어떻게 하루키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적으로 따져 보자면 어렵다. 제멋대로 소설을 써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맘대로 책을 만들어 독립서점에만 책을 입고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는 독자도 생겨났지만 어쩌면 나와 결이 맞을 수 있는 더 많은 독자에게 나를 노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려면 정식 등록한 출판 형태로 책을 알려야 한다. 한국 시장은 좁으니 해외까지 말이다. 그 생각이 급하지는 않다. 나는 젊고 매일 이루고 있어서다. 독립출판도 원래 그러려던 게 아니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에서 소설을 쓴다, 그리고 또 다음 소설을 쓴다로 이어지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테마를 찾았고 당연한 듯이 책으로 묶게 되었다. 독립출판 경험은 후회가 없다. 출판의 가치를 체험하고 있고 책 세상에 거주하는 책방지기의 세계와 그 공간에 놀러 가는 독자의 세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정식 출판을 한다 해도 두루 읽히기 어려운 시대다. 흥미를 끄는 요소, 아름다운 외모나 뛰어난 스펙, 대단한 사연 등 나에게는 그런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잘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없다. 나는 이렇게 쓰는 게 좋은데… 좋으니까 지속하면서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서 늘 말도 안 되는 꿈을 꾼다. 꿈은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자랑하고 다닌다. 어떤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게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답게 살면서, 불행하지 않도록 나를 챙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포기하지 않고 하면서 그보다 더 큰 꿈을 말하고 쓰고 계속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이다. 꿈의 한계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계속해보는 것이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루키 얘기를 한다.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말한다. 나는 내 꿈을 비웃지 않는다. 말하다 보면 신기하게 일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해서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결국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일단 기분이 좋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쉽고 빠르게 기분전환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있다.
나의 위치를 안다. 나에게는 주목할 점이랄 게 없다. 그렇지만 나다울 줄 안다. 이런 나다움은 당신이 내 글을 읽어주고 사랑해줄수록 더욱 좋아진다. 그런 당신이 많아질수록 나는 힘을 얻고 즐거운 마음으로 쓰는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의 장점을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나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한다면 뭐라 말이 필요 없다. 그저 존재만으로 감사하게 된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책을 만들게 되기까지 분명 누군가 말리거나 핀잔을 주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걸 나는 무시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 내가 쓰는 이유는 쓰는 게 좋기 때문이고, 더 심각하게 말해보자면 일단 살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이따가 무슨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그런 생각뿐이다. 그렇게 단순하다. 나를 이루는 것들은. 이렇게 말한 뒤에 주위를 둘러보면 이것 또한 재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고자 하는 일을 빠르게 밀어붙이는 집착과 고집. 원하는 일이 생기면 재빨리 꿈을 나의 일상으로 간주하는 것. 그게 마치 가능하단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