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상자

by 아륜

빛이 새는 곳으로 걸었다. 그곳에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였다. 가까이 가 보니 상자는 각진 얼음 모양이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얼음 안에 노란 나비가 보였다. 나비의 날개는 찢어질 듯 흐물거렸지만 그대로 멎은 상태였다.


나비야

너 거기 갇힌 거니


나비에게 말을 걸었다. 얼음 성벽이 막아 들리지 않는지 대답이 없었다.


내가 구해줄게

잠깐 기다려


주먹으로 얼음을 쳤다. 얼음은 깨지지 않고 손이 다쳤다. 손마디로 피가 흘러내렸다.


이거 혼자로는 안 되구나 사람들을 불러 와야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공구를 들고 왔다. 망치, 톱, 칼, 삽, 드릴, 드라이버, 스패너, 송곳. 서로 자신의 연장이 효과적이라며 들뜬 모습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와 맨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잠시만요

과연 나비가 어서 탈출하길 바라고 있을까요

나오고 싶을 때 알아서 스스로 날아가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나비얼음에게 다가가 손끝으로 모서리를 쓰다듬었다. 앞사람을 따라 손가락 끝으로 얼음을 조금 문질러보았다. 차가운 감각이 지문에서 살아났다. 곧 얼음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무엇을 숨기기 위한 상자가 아니라

얼음 보호막이 필요한 나비였구나


얼음이 물이 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얼음상자 주위로 모여들었다.


정말로 얼음이 물이 되나요

우리도 해볼래요


사람들은 각자 손바닥을 꺼내 얼음의 꼭짓점으로 빽빽하게 모였다. 날카로운 얼음 끝은 칼이 되었다. 급히 몰려든 사람들의 손에서 피가 났다. 피를 본 사람들이 얼음상자를 내버려 두고 떠났다.


나비얼음은 모퉁이가 해어진 채로 보존되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쯤 강가에서 얼음상자를 찾았다. 얼음상자는 뚜껑이 녹은 채로 윗면에 문이 열려 있었다.


너 참 예쁘구나

나비야


나비가 기지개를 켜더니 날개를 폈다.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막 깨달은 것 같았다. 나비얼음에게 다가가 두 손바닥을 펼치고 조심스레 얼음을 위에 올렸다. 그러자 얼음이 사르르 녹아 전부 사라졌다. 나비는 얼음도, 상자도 아닌 공기를 가르며 하늘을 향해 가뿐히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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