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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륜 Jul 19. 2022

올해 복숭아, 내년 복숭아

  오늘 복숭아를 먹었다. 복숭아 중에서 백도가 훨씬 좋다. 나에게 천도는 백도가 없을 때 누가 깎아 입에 넣어줄 때나 먹는 것이다. 하얀 복숭아의 말랑말랑 살이 좋다. 뽀얗고 보드라운 숭아의 피부. 2년인가 3년 만에 백도를 먹는 거였다. 이제 좀 먹어볼까 하면 제철이 끝난 뒤였다. 작년에도 하얀 숭아를 놓쳐 올해는 꼭 먹기로 했다. 봄부터 요플레 먹을 때도 복숭아 맛을 골라 먹었다. 한여름이 왔다. 오늘 오후에는 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카페에서 복숭아 주스를 사 마셨다. 그저 시원만 했다. 퇴근길에 엄마와 마트에 들렀다. 마트를 들어가며 오늘은 그 복숭아를 사줄 거란 말을 들었다. 요즘 장 볼 때 카트에 뭐 하나 올려두기가 어렵다. 그래도 꼭 먹어야 하는 걸 안 먹을 순 없고 복숭아 정도는 참으려 했다. 그렇지만 2022년의 복숭아는 꼭 먹어야 하는 범위에 들어올 정도라 이를 어쩌지 하고 생각하던 중 엄마가 한 박스를 사주신 것이다. 복슬복슬 숭아 열 다섯 개가 담긴 상자를 뒷좌석에 실으며 안전벨트를 매주고 싶었다. 복숭아가 얼굴을 비추는 때는 일 년 중 아주 잠깐이기 때문에 귀한 몸이다. 저녁을 먹고 복숭아 껍질을 벗겨 자르지도 않고 접시에 줄줄 흘리며 먹는데 나의 표정도 함께 뚝뚝 흘러내렸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맛이었다. 올해는 복숭아를 더 못 먹게 된대도 아쉽지 않다. 내년에도 여름 대신 복숭아를 기다리겠다. 그때는 최고급 백도 두 박스를 직접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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