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서 걸으며
아침부터 남편과 싸우고 나와 빠른 속도로 운전을 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회사에 도착해 평소보다 오래 걸려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부장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두드리며 눈을 흘겼다. 가슴이 턱 끝까지 쿵쾅거렸다.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오전 내내 일에 집중했다. 부장이 회의에 가고 팀원 세 명이 동시에 외근을 나가 자리에 없었다. 열한 시 반이 되어 점심 생각이 났다. 띵동. 맞은편에 앉은 신입사원이 사내 메신저를 보냈다.
「과장님, 질문 있는데 잠깐 자리로 가서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모니터 위로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준석 씨, 그냥 오지. 뭔데요?"
들어온 지 다섯 달 된 신입이 싱긋 웃으며 내 자리로 왔다.
"오늘 과장님하고 저 둘이 밥 먹는데 혹시 파스타 어떠세요?"
"그래요. 지금 가요."
"제 차로 가실까요?"
스물일곱밖에 안 된 녀석이 벌써 차가 있나 생각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 적막한 공기가 흘렀다. 지하로 내려가 하얀 세단 조수석에 앉았다. 아까부터 코를 간질이던 향수가 거슬리지 않았다. 오 분쯤 차를 타고 처음 가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열두 시 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준석은 묻지도 않고 테라스로 뚜벅뚜벅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비가 투둑투둑 쏟아져 조금 쌀쌀했다. 마주 앉으니 마치 데이트 같아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오는 이런 식당,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에 기분이 절로 풀어졌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까 출근하실 때 거의 우실 듯한 표정이던데요."
"실은 남편이랑 좀 다퉜어요."
“속상하셨겠어요.”
“동갑이라 그런가 친구처럼 장난치다 자꾸 싸우게 된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저 과장님 몇 살인지 모르고 있었어요.”
“서른일곱이에요.”
아직도 낯선 숫자를 말했다.
"과장님이요? 저는 초반이신 줄 알았어요. 결혼하신 것도 나중에 알았고요."
나는 와인잔에 담긴 물을 계속 들이켰다.
"왜 싸우셨는데요?" 준석이 이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휴."
"과장님 같은 아내 있으면 업고 살겠다. 정말.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이거 먹고 마음 푸세요, 과장님."
요리가 나오자 크림이 진득한 파스타를 내 앞으로 내밀며 준석이 말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남편과 다퉜는지 잊어버렸다. 준석의 말대로 식당에서 주는 커피를 거절하고 나와 다른 카페로 가기로 했다. 아기같이 하얀 얼굴이 일어나자 나보다 훨씬 키가 컸다. 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실랑이하고 겨우 내가 계산을 했다. 준석의 까만 우산을 펴고 함께 걸었다. 우습게도 여자가 된 것 같았다. 여자가 된 기분, 여자로 대접받는 그 느낌이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고 빙긋 웃으며 준석이 우산을 높게 들었다. 어깨가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으며 우산 속에서 이야기했다. 커피를 마시며 삼십 분을 더 쓸 수 있었다. 지금이 점심시간이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아쉽고도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