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고, 대학에서는 수석을 하거나 빠른 취업을 하고 싶고, 직장에서는 성과를 내 인정을 받고 싶으며, 가정 안에서는 멋진 엄마 혹은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어한다. 하물며 비혼을 선택했더라도 경제적으로 안정되며 능력있는, 급이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기도 하지 않나? (아니면 말고지만)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보통은 모두 인정욕구가 있다. 누구나 자기가 특별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다보니 인정 욕구에 끌려다니기도 한다. 책임을 맡고 새로운 일에 뛰어든다. 그런데 이런 인정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고 의욕이 사라진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인정을 해 주는 사람은 형체가 있는 존재일까?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 대중들 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오늘 뭘 먹고 뭐 했는지도 관심이 없다. 자책감에 시달리고 더 멋지고 특별해지지 못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나쁘게 평가 받을거라는 생각 자체가 망상이라는 거다.
게다가 우리는 보통 자신이 특별하지 않으면 처참하다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오늘 일요일이라 빨래랑 청소랑 샤워를 하려다가 안 하고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일본 드라마를 보고 점심을 챙겨먹었다. 그런데도 의욕은 딱히 생기지 않는 것이다. 왜인지 아는가? 내가 밀린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한다고 해서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왜 하는가? 나를 사랑하니까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왜 나는 나를 싫어하고 남들의 기준대로 나를 맞췄을까? 왜 사랑을 받고만 싶어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의 망상적 존재들의 눈 밖에 벗어날까 두려워만 했을까?
나는 특별하지도, 엉망이지도 않다.
나는 그냥 사람이다. 평범하지도 않다. 어떤 형용사를 붙이기 전에 나는 그냥 사람이고. 나는 내가 행복해지면 제일 좋은 사람. 나는 나를 인정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결과만 보지 않고 내가 살아온 모든 길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나를 가꾸면 이상하게 사람들은 나의 밝아진 모습을 보고 긍정의 에너지를 동시에 받곤한다. (오늘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내가 사랑을 나에게 주면 줄수록 오히려 그에 따른 결과물로 내 주변까지 밝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나를 없애고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으로 사랑을 타인에게만 주면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자아가 없는 나를 보며 안쓰러워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사랑을 지나치게 많이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 자신의 쓸모를 사람들도 인정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관계는 서로가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서로 남은 힘으로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돕는 관계다.
오늘 나는 나를 사랑할 의무를 행위할 것이다.
내가 나부터 챙긴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부터 챙겨야 오히려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남은 에너지가 주변을 밝힐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해보면 요즘의 한국 사회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타인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혐오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엉망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이 사람을 사람이기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유일무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당신도 유일무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로 묶일 수도, 영원히 묶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인칭 개체들일 뿐이다.
일요일이니까
뭔가를 하나 해내면 칭찬해주자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