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6
어디 가세요?
밥 먹으러 가.
작년에는 10살이던 하준이가 11살이 된 채로 내게 물었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학원 아이들을 만났다. 지금이 초등학교가 끝날 시간이구나. 그나저나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요 근래 누가 있었지? 하준이와 지호에게 잘가 라고 말하니까 아이들이 희희낙낙 웃었다. 자기들은 나의 존재가 지나가는 행인1 정도 인 듯 했다. 그 아이들을 보고 나는 순간 선생님이 되었다가 다시 이수지가 되어서 길을 걸었다.
여름이 시작되어서 땀이 푹푹 났다. 신흥중학교 옆을 지나가는데 비상음이 울렸다. 여자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본교의 학생들은 모두 지정된 장소로 나와주십시오. 대피 훈련을 시작합니다. 모두 나와주십시오. 심각해 보이는 말투와 다르게 학교는 떠들썩 했다. 아이들은 신나있었는데 나는 그 사이렌을 듣고 대피를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지나치니 남고생들이 모두 운동장에 나와있었다.
나 또한 분식집으로 도망쳐서 치즈돈까스를 시켰다. 여자가 들어왔다. 김밥 한 줄 포장해주세요. 국물도 같이요. 그러자 사장님이 말했다.
“국물은 가위바위보에서 이기시면…”
바쁜 여자 손님은 사장님의 말을 듣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계속 그 사장님의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면 국물을 준다고? 계산을 할 때 사장님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가위바위보는(뭐죠?)
“아 제가 하는 농이에요.”
농.
농담도 아니고 농. 제가 자주 하는 농이에요. 아 친한 손님이었나봐요? 아니요. 그냥 하는 거에요.
사장님의 실패한 농담을 듣고 나는 웃었다.
밥을 먹고 근처의 여성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가지 않아서 근처 약국에서 마스크를 샀다. 점원은 너무 친절했다. 너무 친절해서 마스크 봉투까지 대신 버려줬다. 너무 친절하면 괜히 의심이 된다. 그 직원은 너무 힘들어보였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내겐 그랬다.
초음파 검사를 받는데 의사 선생님이 다낭성 난소라고 말했다. 난포에 구멍이 있잖아요. 이러면 제때 제때 배란이 잘 되지 않죠. 자궁 내막은 준비가 돼 있는데 말이에요. 나는 거대한 장기가 된 것처럼 설명을 들었다.
구멍이 많죠? 보세요. 벌집 삼겹살처럼 말이에요. 곰보처럼 말이에요.
굳이 그렇게까지 비유를 해야 했을까. 나는 주사를 맞고 내 몸에 벌집 삼겹살이 자라나고 있군 하며 헛헛하게 길을 걸었다. 차들은 너무 많이 지나갔고 사람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계단에 걸터 앉아 쉬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대출 홍보 카드를 다 줍고 다녔다. 나를 슥 보고는 내 옆의 대출 카드를 주워서 가져갔다. 건물주인가? 거리가 더러운 게 보기 싫은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대출을 할 까봐 걱정되어서 줍고 다니는 건가. 아저씨가 지나가고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가 내 앞을 지나갔다. 아무도. 그들 중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카페 앞에는 담배를 피는 중년 남자가 있었는데 나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가게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음료를 시키고 걸었다.
아직 출근 시간까지는 시간이 40분 정도 남아있었는데 내 앞에서 걸어오는 모자가 도로를 보더니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에어팟을 빼고 그들이 바라보는 게 무엇인지 바라봤다. 고양이였다. 도로 난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차들이 쌩쌩 지났다. 고양이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아마 이대로 두면 죽을 터였다. 죽어가는 고양이 옆에 앉았다. 한 참 바라봤다. 왜 넌 죽어가니. 왜 넌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죽어가니. 고양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씨발 언제부터 관심 있었다고 내 옆에 앉아있어?
나는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어이. 개 못살아. 다리 부러졌어. 냅둬. 야생동물 잘못 건드리면 다쳐. 가자 가. 얼른 가자고.
내 팔목을 끌고 아저씨는 나를 일으켜세웠는데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긴 했으나,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 아저씨를 안심시키고(네네 곧 갈게요) 다시 뒤를 돌아봤다. 강아지를 베낭에 매고 있는 여자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컵에 물을 담고 추르를 담아서 그 고양이에게 건네주었다.
“그 고양이 차에 치였나봐요.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요. 못 움직여요.”
우리는 그 고양이를 바라봤다. 여자는 어떡해 하면서 순천시 동물 보호과에 전화했다. 보호과 사람은 그녀에게 화를 냈다. 어디서 듣고 여기로 전화를 해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제발 쓸데 없는 행동하지 말고 죽음을 모르는 척 해요. 우리는 한 참 그곳을 서성였는데 아까 나에게 자리를 뜨자고 재촉했던 아저씨가 다시 되돌아오며 나에게 말했다. 한 손에는 노끈을 가져오면서.
“끈으로 몸을 감아서 애를 올려놓자고.”
아저씨와 나는 힘을 합쳐서 고양이의 몸을 끈으로 감고 들어올렸다. 고양이는 도로 한 가운데로 뛰어갔다.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차가 오기전에 고양이를 도로 옆 길가로 내쫓았다. 고양이는 다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길로 올라가 아파트 난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지막 힘을 짜내 인간에게 벗어나는 고양이를 보면서 우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차에 치어 죽지 않아서.
그러나 그 고양이가 며칠을 버틸 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저 멀리 가버렸고. 나와 아저씨는 길을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근방의 아파트 가격을 이야기하면서.
“고양이를 살리든 안 살리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럼 무엇이 중요한 걸까?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 걸까?
나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 늙기 위해서. 죽음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탕진하기 위해서. 렌즈가 마를 때까지 강의를 하기 위해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싶었다. 그 사장님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국물을 얻어가고 싶었다. 벌집 삼겹살을 몸에 품고 고양이를 살렸다. 그러나 고양이는 나를 살릴 필요 없다는 듯 떠나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조용했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 시끄러웠다. 참을 수 없는 농담들이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었다.
이건 우울한 거랑 조금 다른 거다.
한참동안 누군가와 우리는 왜 사는 걸까 라는 토론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말했다. 태어났으니까 살지. 그럼 우리는 왜 죽는건데? 태어났으니까 죽지.
그러면 우리는 왜. . 잠깐만 왜 라고 그만하고. . 좀 즐 겨봐. . .
좀 즐 겨 봐
이건 우울한 거랑 조금 다른 거다.
최근 농구공을 샀다. 그걸 오늘 6학년 학생들한테 말했다. 그랬더니 애들이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마치 나를 그들의 동료로 받아준 것처럼. 선생님도 농구를 한대! 그리고 오늘 이 아이들의 수업 분위기는 최상이었다. 나는 왜 갑자기 농구공을 샀을까?
오늘 아침 집 밖을 나설 때 냉장고 옆에 둥그러니 있는 농구공은, 꼭 내 속 안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모르겠다. 그 농구공은 아마도 내 난포 속 동그랗게 패여있는 구멍들.
곰보들.
벌집 삼겹살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농담.
농담이 실패하는 이유는. 웃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라 누구를 울리기 위해서 한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11살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했기 때문에 오늘
집으로 가는 빈 길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 무인카페에서, 2023, 0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