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층을 이룬 나무껍질이 이른 봄날 시냇가 얼음장 밑 등고선을 닮았다. 갈색 빛바랜 담쟁이가 아름드리 노송을 타고 오른다. 예닐곱 개 붉은 이파리를 매달고 갈라진 나무껍질을 밟아 넝쿨 발을 힘겹게 내닫는다. 흔한 가을 사진 한 장의 감동은 셔터를 누른 이의 남다른 시각적 안목 덕이 컸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수준급 촬영기술의 일반화 현상도 한몫했을 것이다. 두 눈이 호사한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 ‘생명’이었다.
유치환은 그의 시 ‘깃발’에서 이 낱말을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표현한다. 숨 쉬지 않는 천 조각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에서 존재의 위대함을 발견한 듯하다. 모든 생명의 궁극적인 목적은, 굳이 진화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종족 보존 내지는 계승이라는 면을 빼놓을 수 없다. 담쟁이는 세월의 층이 켜켜이 쌓인 소나무를 그의 안식처로, 영원일 수 없어도 한동안 몸을 의탁할 숙주로 삼은 모양이다. 생명이 다하기 전에 뭐라도 흔적은 남겨야겠다는 절박함일까. 흔적? 그래, ‘생명’이 아니라 ‘흔적’이 더 어울리겠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곱고 맑은 음색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누렸던 통기타 가수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1980년 전후 대학입학 수험서의 고전이라 할 영어참고서는 ‘ㅅㅁ종합영어’였다. 이 책의 단문 독해 부분에 인용된 문장 하나가 ‘Love has gone, memory still remains.'다. ‘메모리’라는 단어를 ‘기억’이 아니라 ‘옛날’로 해석하면 노래 가사와 똑 맞아 떨어진다.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가 어쩌다 이 문장을 생각나게 했으며 사랑과 옛날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면서 기억(記憶)과 추억(追憶)의 차이가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했다. ‘기억’을 반추하는 행위로서의 ‘추억’이라고 일단 정리했다.
기억이 늘 온전한 것은 아니다. 기억력 감퇴나 노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고 싫은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뇌의 본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기야 보고 듣고 말한 사실 전부를 머릿속에 담아 다닌다면 그것도 할 짓이 아니다. 망각은 때로 우리를 편하게 만든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인간적이라 할 만한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망각 아닌가. 그런데 인류가 이해해왔던 방식을 완전히 떠난 새로운 인간형이 곧 출현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를 인간답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한 조심스러운 논란이 근자에 부쩍 횔발하다. 인류가 겪지 못했던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 해체, 즉 ‘인간성 상실’이 주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의식이나 감각? 감정이나 합리적 사유 능력 등 도덕적 지위와 연관된 특성을 인간과 동등하게 갖추게 된다면 그리고 그들도 고통을 느끼거나 그에 상응하는 감정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면, 타인을 향한 사랑과 미움을 느끼고 반응하는 존재의 탄생이 과연 가능할까. <호모사피엔스의 미래>에서 신상규 교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미래 학자들은 첨단 과학기술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본성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충분히 갖춤으로써 인류는 점점 인공지능 요소들과 결합하여 인조인간화할 것이며, 생물 종으로서의 인류, 즉 호모사피엔스와 전혀 다른 포스트 휴먼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라고.
금세기 들어 부쩍 발달한 생체 공학 덕분으로 우월 인자만을 추출하여 건강하고 똑똑하며 아름다운 인간을 생산하는 연구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환경에 적합한 인간을 창조하려는 시도, 슈퍼맨의 몸과 컴퓨터의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기술연구가 실용화할 경우 앞으로 태어날 신인류도 지금 우리처럼 그들 이전의 기억을 추억할까? 젊은 날 아련한 첫사랑과 아득한 유년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을까.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고 중얼거리면, “너, 가을 타는구나. 술 한잔하자" 라고 받아줄 친구가 미래 세계에도 존재할지 의문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문명 앞에 우리가 맥없이 무릎 꿇는 것은 어떻든 가당치 않다. ‘생물학적 종으로서의 인간은 자연적 진화의 우연적 산물이며, 그것은 불가피하지도 당위적이지도 않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종이 유지되고 보존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명제는 학자들의 몫, 몽매한 나의 머리로는 정답을 찾지 못한다, 차라리 이파리라도 한 장 남기려고 뻣뻣한 소나무 껍질을 안쓰럽게 기어오르는 담쟁이의 본능적 강인함에서, 위대하다는 인간의 이성을 능가할 법한 생명의 흔적을 본다.
과학과 의학의 진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성과에 재나 뿌리겠다는 생각은 요즘 말로 ‘1’도 없다. 답답해서 훌쩍 떠나온 길, 이른 새벽 수청리 강변을 뿌옇게 덮은 물안개한테 물어본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생명이라면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