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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반장 Dec 28. 2023

쥔과 객(客)- 아기를 찾아가세요

   언제부터였나. 폭 400여 미터 너른 들판 너머 건넛마을 60대 초반 젊은 이장님 목소리가 이틀에 한 번쯤 부엌 창을 두드린다. 마을 행사나 상급 행정기관의 공지를 전하는 확성기 속 늘어진 음성이 어눌하다. 먼 거리를 날아오느라 흐트러진 소리는 알아듣기 힘들어도 끝부분 “~~~씀다.”나 “바람돠!” 발음은 확실히 들린다. 방송 듣기 거북하다면서 듣지 못한 앞부분 내용을 궁금해한다.

   지난봄 이장이 마을 중심에서 먼 집에 외따로 사는 나를 찾아왔다. 개별 가구마다 오디오 기구를 설치하여 공지를 전하겠다고 한다. 혁명의 시대가 아니니 주민감시 수단일 리는 없다. CCTV와 SNS 등을 통해 각 개인의 일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끊임없이 노출되는 시대 아닌가. 시 전체가 그렇게 바뀔 거라는 소식도 반가웠다. 내 일상과 하등의 관련 없는 이웃 마을 행사 알림이 더는 내 귀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니.     

 

   마을회관 건물로 들어섰다. 주방, 거실을 지나 미닫이문을 두드린다. 대부분은 할머니들, 바닥과 소파에 편하게 누워있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다. 낯선 이의 등장이 일으킨 호기심과 반가움이 방안에 그득하다. 이장 댁을 여쭸다. 회관 뒤 골목길 끝 돌담 집, 빨강 기와와 하얀 페인트칠 대문, 자갈 덮인 안마당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는 만 원권 지폐 열댓 장이 널려있다. 계십니까! 대답 대신 돈을 장난감 삼아 뒹굴던 고양이가 동작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한참 만에 문을 열고 나온 주인장의 하품 한방이 늘어진다. 대뜸 날리는 인사가 뜬금없다. 안 와요. 연세들이 있어서. 단체로 주문한 소금 가져가라고 열 번 넘게 방송했어요. 나도 듣긴 했다. 어디 살아요? 이장이 바뀐 줄도 모른 채 세월 많이 보냈다. 주민등록지 거주자 확인차 왔다는 대답에 현관 쪽으로 돌아서던 그가 그제야 바닥에 흩어진 지폐를 발견하고는 주섬주섬 집어 들며 중얼거린다. 덕팔이구만. 사람 참, 물색없긴. 창문 한번 두드리고 가면 어디 덧나!

   주민 명부에서 내 이름을 찾아 서명했다. 뒷집 공군 대령과 옆 도자 가게 쥔은 다녀가지 않은 듯 비어있다. 이웃이라는 애꿎은 이유로 나더러 사인하라는데 왠지 내키지 않는다. 이장 입회니까 괜찮다는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찜찜하다. 그래, 까짓 서명쯤이야. 이장 집 방문조차 버거운 노년들, 애들과 청년의 숫자는 줄고 어른들만 즐비한 동네, 인구절벽이라는 달갑잖은 용어의 불편한 의미가 새삼스럽다.

   돌담길 따라 돌아 나온다. 손에 꼽을 정도지만 이사 와서 십여 년간 마을버스 다니는 중심 도로로만 지나다녔다. 이곳저곳 활보하면 마을 사람들이 이방인 취급할까 봐. 골목에서 잠시 멈춘다. 낮은 산 아래 푹 파묻힌 마을이 아늑하다. 어줍은 풍수 소견으로 봐도 번듯한 지형과 방향, 산자락 한편엔 알만한 소설가의 작업실도 있다. 한 가지는 걸린다. 암만 주말이라 해도 그렇지, 애들 떠드는 소리가 없다. 어릴 때 선생님 말씀이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이랬는데.     


  1970년대 합계출산율 4.0이던 대한민국은 2023년 3분기 평균 0.60대로 떨어지며 감소율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다졌다. 인구 감소의 심각성에 대한 범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라든가 실질적 인구증가 정책 제고 등의 구호는 그저 공허하다. 청년 대부분은 결혼과 2세 관련 언급 자체를 반기지 않는다. 아이 낳고 키울 사회적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다든가 자신만의 인생을 살겠다는 그들의 의식을 응원할 아량도, 호통칠 객기도 아직은 모자라다.

   인구수 변화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국가나 민족의 부침(浮沈)을 점쳐볼 수 있는 잣대 중 하나였다. 사람 늘어나는 나라가 일반적으로 번창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대한민국의 저출산 보고서가 뜻하는 결론은 참담하다. 이 출산율 기준으로 산정해본 100년 후 이 나라 인구는 현재의 20% 수준인 1,200만 정도라고 한다. 일면 국가 존립 자체를 경고하는 묵시적 알림 같다. 걱정해서 해결되지 않을 문제, 상황이 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구 감소를 전제로 나름의 근거를 붙인 대한한국 소멸 시나리오가 인터넷 공간을 버젓이 활보한다. 한민족의 소수화를 전제로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위성국가나 그 자치령으로 전락할 거라는 혹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북한으로의 역 적화 통일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이민자를 받아들여 그나마 국가 형태를 유지하는 대안이 멸망보다 낫다는 부분에 이르면 실소를 넘은 자괴감을 주체하지 못한다. “주인 없는 땅에 객이라도 설치는"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끔찍한 경고. 문제의 해결책은 절대로 아닌 시나리오, 상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또 다른 미래를 떠올린다.     


   2046년 말 대한민국은 인구 멸실 사태 해결에 연구와 투자를 거듭한 끝에 혁신적인 인공 태아 생산 기술을 완성한다. 총인구 수급 계획에 의거 유전자 복제 및 조작 과정을 거쳐 예비 부모가 바라는 수준의 외모, 성격, 지능을 갖춘 맞춤형 우량아를 생산한다. 국가는 입양 희망 부부에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 완전 무료, 최초 1회 주택 구매 자금 무상지원과 상당액의 “사회 공헌 수당”까지 지급한다.

   23년간 이장직을 연임할 수 밖에 없었던 코맹맹이 할배 음성이 이른 새벽부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오늘도 안녕하심까. 이장임돠. 상반기 신청 자녀가 닷새 전 도착했씀돠. 다섯 명의 귀여운 아가들이 마을회관 인큐베이터에서 입양 부모와의 첫 대면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임돠. 다들 바쁘신 줄 아오나 오늘 오후까진 아기를 꼭 수령하시기 바람돠. 주지하시는 대로 신생아 방치 행위는 50년 해저 감옥형 대상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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