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Charlotte,
당신을 사랑해서 행복하기보다 괴로웠던 한 남자가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246년, 내가 책에서 그를 처음 만난 이후 43년 만입니다. 입대 전까지 열댓 번 넘게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샤롯데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 리 없죠. 당신이 어쩌면 마음속으로 사랑했을 순정파 청년 베르테르, 하고많은 남자로 복제되어 안타깝고, 아파서 헤맸을 수많은 베르테르의 후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샤롯데 아가씨?
1771년 5월 10일, 베르테르는 사랑에 푹 빠진 자신의 속내를 친구에게 담담히 적습니다. 요즘 내 영혼은 감미로운 봄날 아침처럼 더없이 아름다운 명랑함에 빠져있네, 라고. 1980년 같은 달 같은 날 휘갈긴 몇 줄 내 낙서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최루가스 뒤섞인 꽃향기가 교정을 뒤덮었다. 라일락과 아카시아는 그녀의 얼굴이고 향기다.' 훗날 80년의 봄이라 불린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연애질에 홀딱 빠져있었습니다.
1771년 9월 3일 편지에서 베르테르는 절박한 내용으로 자살을 암시합니다. ‘나는 떠나야 한다. 벌써 2주일 전부터 그녀 곁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228년 후 2008년 9월 3일 내 기록은 베르테르의 편지와 다릅니다. 달라도 너무 달라 미안합니다.
운현궁에 가을이 왔다
노안당(老安堂) 지붕 위 코발트색 깊은 하늘
서까래 끝 풍경(風磬) 주변 바람 몇 줌 숨바꼭질
마른 잎새 밟는 소리 또박또박 걸음걸이
그녀도 왔다
2018년 늦봄, 다시 운현궁. 갑작스레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밤새 내렸습니다. 나뭇가지에 편지 한 장 걸려있네요. 영원한 베르테르의 그녀, 샤롯데 당신이 혹시나 다녀가셨나요!
고놈 연분홍이
찌든 눈 잠깐 호강시켜주고는
간밤 비바람에 반 토막 났다.
그대 떠나던 날처럼
떨어진 꽃잎처럼
이 봄도 그렇게 지나겠다.
남겨진 사람이나 가버린 사랑이나
무시로 뿜는 한숨
살구꽃 다시 필 때까지는 진물 나게 아리겠다.
(2018년 6월, 운현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