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내 엄마와 엄마의 엄마

by 문예반장

대기 번호 28. 초여름 서울 외곽 소도시, 밥때 지나 한 시 반, 냉 메밀 한 그릇 먹으려는 손님들로 식당 앞은 복작거린다. 자리 나기까지 20분 넘게 걸렸다. 국수 위에 올리는 고명은 장어와 새우, ‘주문은 과학입니다’라고 안내하는 키오스크 화면을 클릭했다. 새우, 새우(곱), 장어, 장어(곱)의 네 가지 메뉴 중에서 느끼한 장어를 뺀다. 튀김 세 개를 주는 11,000원짜리 ‘새우’와 12,000원 ‘새우(곱)’을 비교한다. 새우가 곱이면 합은 여섯, 단돈 천 원 추가로 튀김 세 개를 더 주는 식당이라니 손님이 미어터질 만하다. 미련 없이 ‘새우(곱)’을 골랐다.

얼음 육수를 밀치고 솟아오른 메밀 위에 잘 튀겨진 새우 세 개가 먹음직하다. 하나를 집어 먹는다. 바삭바삭 고소한 식감이 혓바닥에 착착 감긴다. 두 번째 새우를 입에 넣으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세 마리잖아. 투덜대다 스스로 안다. 이 ‘곱’은 새우 숫자가 아닌 메밀 면 양이었음을. ‘약 올려! 새우가 곱인 줄 알았잖아’ 지나가는 종업원의 뒤통수를 째려보는 순간 폭풍처럼 몰려오는 일고여덟 살 적 기억, 엄마와의 실랑이였다.

내 밥그릇엔 사발 높이만큼의 밥이 꾹꾹 눌려 더 쌓였고 나는 그게 싫었다. 먹기도 전에 뱃속이 부담스러워 심통부터 부렸다. 먹어 보고서 모자라면 더 달라겠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고, 같잖다는 투로 쏴붙이기까지 했다.

“호강에 겨워 환장했냐, 이놈아. 맨날 남아도는 밥 아니다. 줄 때 실컷 처먹어!”

그 엄마에 그 아들은 곧 죽을망정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릇 위로 쑥 올라온 만큼의 밥을 보란 듯이, 어김없이 남겼다. 그놈 성깔이 엄마 못잖게 고약했다.

밥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시작된 엄마와의 갈등은 엄마의 말투를 보면서 해가 갈수록 깊어갔다. 진즉 쇠락한 방계 왕족의 장 며느리가 뭐 그리 대단한지 이를 무기 삼은 엄마의 위세는 언제 어디서든 꺾이지 않았다. ‘니깟 무지랭이들, 옛날 같으면 옆에 서 있지도 못할 상것들이. 대체 생각이 있이 사는 겨? 법도라고는 코딱지만큼도 모르는 천하의...’ 사람들은 엄마를 슬슬 피했다. 욕쟁이 엄마가 그렇게 창피할 수 없었다.

나이 들면 불같던 성질이 수그러들 법도 하건만 일흔 중반까지 문중에서 엄마 이길 사람은 없었다. 세월이 약이랬다. 옳고 그름 관계없이 무조건 엄마 편이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치매의 시작으로 엄마는 급격히 쇠약해졌고 괄괄한 성격도 차츰 무뎌갔다. 남들보다 유별나게 까칠한 원인은 계속 수수께끼였다. 장마 시작 무렵 꼭두새벽에 날아온 엄마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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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시멘트 담벼락 밑엔 올망졸망 채송화, 닭 머리 맨드라미와 수채화 빛 수국이 한창 피어있었다. 엄마 스스로가 당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계시던 때다. 후딱 내려갔다. 당신 얘기를 띄엄띄엄 들으면 사납기로 전 세계 일등인 (형제들은 그렇게 표현했다) 엄마한테 대판 욕먹기 일쑤다. 꼼꼼히 새겨들어야지. 대청 기둥에 등짝을 기댔다. 기운 없는 노모께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입을 열었다.

“겨울 빼고는 징글징글했어. 어른들은 땅 고르고 씨 뿌리고 열매 거두고 때마다 먹을거리 퍼 나르고. 바쁜 하루를 그렇게 보내면 봄 여름 가을도 물처럼 지나가네. 힘들어도 농한기엔 살 만했지. 그래봤자 보리쌀 팔아먹기 바빴지만. 그땐 다들 그랬으니.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안 보이더라. 왜 없는지, 어디 갔는지, 언제 올지도 모른댜. 속이 타네. 네다섯 살배기 애가 뭘 어쩌겠어. 커가면서 주변 사람들 수군거리는 말과 어렴풋한 기억이 시도 때도 없이 들리고 떠오를 때마다 숨어서 눈물 훔치고. 내 엄마... 참 독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엄마에게도 엄마라는 존재는 독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건 그렇다 치는데, 신세 한탄이나 하려고 새벽 댓바람부터 전화를? 그럴 리 만무하다.

“그 후로 그 엄마를 다시는 못 봤나요?”

“양심은 있었내벼. 서너 달 전이었나, 사람을 보냈더라.”

잘생긴 남자 하나가 찾아와서 몇 가지 묻고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누님이라 부르며 큰절을 올리더라고. 어머니가 큰딸을 보고 싶어 한다며 당장 가자고.

“그래서 어쩌셨어요?”

“딸이 있기는 했대? 평생 내팽개쳤던 년을 그 나이 되어 왜 찾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부터 그렁그렁하다. 평생 미워하면서도 그립던 엄마를, 연락 한번 없다가 뒤늦게 손 내민 엄마를, 괘씸해서 내쳤다며 코를 킁킁거렸다. 엄마의 독설과 생떼는 서러움의 다른 표현이었나. 그제야 속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독하다고 말했던 그 엄마, 줄 때 처먹으라 쏴붙이던 내 엄마, 그 엄마한테 꼬박꼬박 대들던 나, 한쪽에서 본다면 모두 나쁜 사람들이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엄마가 싸움닭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이유가 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이거였구나. 엄마는 앞산 꼭대기 먼 하늘만, 나는 담벼락 아래 예쁜 꽃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뒷집 개도 옆집 야옹이도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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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눈치 안 보고 엄마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던 몇 가지 중 하나가 고봉밥이었다. 밥 많이 준다고 찌푸리던 내가 이젠 새우 숫자가 모자라다 불만이다. 나쁜 놈! 저 좋은 것만 찾아서일 게다. 변명은 아니다만 줄 때 처먹으라던 윗세대의 속내를 알아채기엔 그때의 내가 턱없이 어렸다. 엄마는 가끔 꿈이라도 꾸셨을까. 쌀도 밥도 펑펑 남아 돌아가는 세상을, 둘째 그 당돌한 애한테 그릇 높이만큼만 밥을 줘도 안쓰럽거나 미안하지 않을 언젠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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