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흉(凶). 새벽잠 깨어 습관적으로 뒤져본 스마트폰 앱이 나의 하루 운을 알려준다.
‘의욕은 충만하나 행하고자 하는 일마다 장애가 따른다. 사소한 무관심으로 연인과의 불화를 초래하지 말라. 원거리 여행은 삼가는 게 좋겠고.’ 웃음이 난다. 뭔 일이 벌어질지 두고 보리라. 삼가라는데 정면으로 부닥치고 싶은 심보는 대체 뭔지. 아침부터 남한산성 북쪽 언저리의 신도시 얘기가 아침부터 동문 밴드에 올라왔다.
고등학교 후배 A가 위례 신도시에 카페를 낸 얘기는 진즉 들었다. 그녀의 후배인 J가 온라인상에서 한 마디 꺼낸다. ‘거기 팟타이 맛이 좋고 케이크도 죽여’. 기분 전환 겸 점심 한 끼 후딱 하고 디저트로 남한산성 행궁 앞 단팥빵? 잘 됐다. 일면식 없는 후배지만 동문은 그런 거잖아. 아무렴! 평소 내 나라의 학연, 지연, 혈연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따지면서 내가 직접 관계되는 일이라면 마냥 관대하다.
갑작스레 결정한 여행길에서 요즘 말로 소위 ‘벙개’를 쳤다. ‘시간 되는 선후배님 망설이지 말고 오세요‘. 그런데 이 황금 주말에 사전 계획 없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그제야 오늘 내 운세가 ‘흉’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 무리할 필요 없음을 알면서도 잠깐의 망설임 끝에 다시 마음을 다진다. 때로는 일상을 벗어난다는 사실 하나로 다분히 충동적인 결정일망정 때로는 존중받을 만하다!
휴가철 고속도로 상황이 거북이처럼 느리다. 어제는 태풍이, 오늘은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문다. 맛 좋다는 A 후배 가게를 떠올리며 짜증을 삭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인조, 행궁, 위례, 삼전도의 굴욕, 벌봉, 수어장대 등을 빼고는 내가 가는 곳에 대한 정보가 없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J에게 주소를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카페 33-3이라 검색하면 자세히 나와요~~~’
숫자 세 개를 합친 이름 CAFE xxx 방식의 작명법이 한때 유행을 탔다. 똑같은 수의 나열은 사람들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을 들먹이지 않고도 세 개 이상의 선을 연결해야 발 디딜 공간이 이뤄진다 해서 3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 원리의 기본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대단히 거창하며 좋은 이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앞에서 피식 웃어야 했다. 카페 소재지의 번지수가 33-3이라는.
새로 조성되는 도시 어디나 늘어선 커피집이 여기도 넘쳐난다. 가게 근처 길가에 대충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계산대 앞의 직원에게 사장님 계시냐 물었더니 누구시냐 되묻는다. 얼결에 고등학교 선배라고 대답했다. 어색하다. 머리 허연 애가 찾아와 느닷없이 가게 사장을 찾는 모습은 내가 봐도 궁색하다. 후배 사장은 외출 중이었다. 안부나 전해달라는 J 후배의 문자가 때맞춰 도착한다. 사람도 없는데, 뭘.
점심을 건너뛴 혀가 단맛을 찾는다. 바닐라 라테 테이크아웃을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 몇 자 휘갈긴다. 글씨는 삐뚤빼뚤 내용은 횡설수설, 대강 마무리했다.
“A 후배 님, 여기 팟타이와 케이크가 맛있다 들었는데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겠어요.
가게가 예쁩니다. 다음에 들르죠. YH 5회 ㅇㅇㅇ”
전화번호를 써둘까 하다가 관뒀다. 남녀공학이 뭔 죄라고,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는 함께 서 있기만 해도 선생님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으니.
밖으로 나왔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길옆 도로표지판이 확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보호구역, 빨강 동그라미 속 흰 바탕 위 검정 숫자 20. 불길한 느낌, 생각해보니 안 돼도 시속 50킬로는 넘게 달렸을 테고 속도위반 딱지는 보나 마나 당첨이다. 주변을 살펴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더라는 통설이 거짓이기를 고대하던 나의 희망은 신호등 옆에서 반짝거리는 속도 측정 카메라를 발견하는 순간 물거품이 되었다.
올라올 때 한 시간 걸렸다. 하행선 고속도로 상황은 그보다 나을 것이다. 냄새 싫어 망설이면서도 생각없이 입에 무는 어른용 구름과자가 당긴다. 파인 컷 울트라 0.1,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외국산 수입 담배 판매가 금지임을 처음 알았다. 333의 의미 추측은 완전히 틀렸고, 점심 식사 시간을 놓쳤다. 내가 찾아간, 나를 알 리 없는 후배도 만나지 못했다. 속도위반 교통 범칙금이 조만간 날아올 테고 이제는 편의점까지 나를 거부한다. 흉(凶)이 맞네. 그런들, 잠깐의 일탈은 성공했잖아. 남한산성 저 너머 장마 끝 맑은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 가을이 곧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