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by 문예반장

설거지


부엌으로 들어선다. 빈 그릇으로 가득 채워진 싱크대 앞에서 한숨이 난다. 푸짐한 점심은 아니었잖아! 동문 체육대회 때 받은 메밀면을 냉동실 여유 공간 확보 차원에서 처치하고 어제 남긴 불고기 몇 점 데운 게 전부인데 속된 말로 열 받는다. 아내가 딱하다는 듯 입을 연다. 오늘 아침엔 바쁘다며 설거지를 안 했지. 결명자차는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호박죽을 먹자고 징징댄 사람은 누구셨더라! 그래도 불만이다. 통장 잔액이 저만큼이라면 모를까.

영화 “인턴”에서 그랬듯 필요하다면 남자도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시대다. 아침 식사와 설거지를 맡겠다는 내 결심은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기 버거워 선택한 나 자신과의 타협인지도 모른다. 어둠 내리는 뒤뜰에서 야윈 살구나무 가지 새로 하얀 점이 센 바람에 실려 나비처럼 팔랑댄다. 저녁때 시작된 비가 밤새 내리리라던 일기예보, 빗물에 섞여 스스로 삭아버릴 뒤뜰 살구 꽃잎처럼 설거지도 그러면 어디 덧나!

상견례장에서, 전기밥솥을 선물하겠다는 어르신이 조카며느리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고모님, 우리는 그거 필요 없는데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왜? 이거 최신형 비싼 거야. 밥은 해 먹어야지!”

“햇반 있잖아요. 그거 질리면 오곡밥 김밥 쌀밥, 간단 앱 주문으로 배달까지 되고.”

뭐래! 그러면서 스치는 생각, 설거짓거리 줄어 편하긴 하겠네.

그러나 햇반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집갈 딸을 둔 친구를 만나 전기밥솥 사건을 얘기하면서 톡톡

튀는 요즘 세태를 꼬집고 싶었던 나의 건방은 그의 긴 탄식 속에 묻혀 쏙 들어갔다.

“그 정도면 양반이야! 우리 딸년은, 아휴~. 사위 될 놈까지 소갈머리 없이 덩달아.”

왜 집에서 밥을 먹느냐, 전기세 아끼고, 물값 줄이고, 힘도 덜 들이고. 밥집 찻집 죽집이 널린 세상, 문명의 이기(利器)와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신세대의 주장은 내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허우대만 멀쩡했지 체력 부실한 아내 대신 그릇 닦는 일쯤 쾌히 도와주리라 호기롭게 나선 시점이 7~8년 전, 미군 부대 주방 경력 몇 개월이 믿는 구석이었다. 내친김에 덤볐다. 내가 익숙한 서양식으로 아침밥을 직접 준비하리라. 이 기회에 새벽잠 많은 아내한테 점수나 따자. 아침형 인간인 나로서는 점심 지나 느슨해지는 오후 시간을 보완하기 위해 오전 시간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도 들어있었다.

옛날이든 현재든 설거지는 대체로 여성들의 업무였다. 삶의 질이나 인간다움 등의 호사는 둘째치고 당일 먹거리 구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주거지 근처 과실과 곡물 채취 작업은 연약한 여성도 가능했겠으나 먼 거리 야생에서의 동물 사냥은 체력면에서 남성 몫이라는 가설이 훨씬 타당하다. 그리하여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육아나 집안 관리는 여성의 의무이자 책임인 양 확실하게 굳어졌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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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전 5대 종가였던 우리 집은 연중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 젊을 때 푸념처럼 늘어놓던 ‘그때는~~~’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한 해 스무 번 이상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제사 하루 전부터 할아버지 댁에 모여 제사 준비를 시작했다. 온종일 누군가는 집구석 어딘가에서 음식을 먹었고 부엌에선 상을 차려댔으며 한쪽에서는 잔반(殘飯)과 빈 그릇 처리에 분주했다. 밥상 앞에서 음식 투정하는 행태를 괘씸하게 보는 나의 인식은 그때부터 생겼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편리한 이 세상, 하루 두세 번씩 꼬박꼬박 달갑잖은 설거지로 왜 고생해야 하는지 은근히 짜증 날 법하다. 상을 치운 지 언제라고 밥때는 무심하게 다가온다. 다시 쌓여가는 빈 그릇과 음식 찌꺼기, 뭣보다 제아무리 열심히 치운들 생색이 나지 않는다. 수고를 알아주기는커녕 당연하다고 여긴다. 3대 때로는 4대까지의 대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 대를 이어 며느리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곤했을지 안 봐도 알겠다.

설거짓거리 없는 세상을 떠올린다. 아무리 쥐어짜봤자 안 먹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치우는 작업의 최소화 방법으로 얄팍하나마 햇반이 일시적인 대안은 되겠다. 일회용 식기와 포장지만 처리하면 그만이다. 김장도 필요 없고 전화기 자판만 꾹꾹 잘 누르면 배달되는 시대, 아랫세대의 선택이 어쩌면 지금껏 우리가 해온 방식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그게 마뜩잖은 나, 인정하든 말든 고루한 구닥다리 ‘꼰대’라는 부류로 나도 이미 들어섰다는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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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본질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의 세상에 대한 시각과 취향을 가감 없이 반영한다는 점이다. ‘옳다, 그르다’거나 ‘좋다, 나쁘다’는 이분법으로 규정하기 참 어렵다. 흘러가는 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다. ‘밥 말고 햇반이 있다는 관점을 철딱서니 없는 예비신부의 단순함이라 평가절하했으나 이를 사정없이 까부수는 한 방, ‘식사를 꼭 집에서 해야 하나요? 밖에서 먹는 게 어때서. 설거지도 필요 없고.’ 찬성은 아닌데 논리적인 반박이 쉽지 않다.

외식 안 비싸, 햇반도 이젠 냄새 안 나. 뭔 소리냐 깔아뭉개다 그 주장이 신세대 편의주의 방식의 헛소리만일지 돌아본다. 사실이라면, 오랜 습관에서 비롯된, 가공식품보다 직접 만든 음식이 건강상 좋다는 그리고 외식이 집밥보다 비싸다는 관념이 틀렸다면 과감히 버려야지. 그러나 쌀밥 대신 햇반을, 그도 모자라 세 끼를 아예 밖에서? 어스름 새벽 싱크대 옆 창밖의 과실수를 바라보면서 쓰잘머리 없게 고민이 깊다. 얼마 전까지 고운 꽃 범벅이던 잔가지에 다닥다닥 얼굴 내민 살구 숫자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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