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경양식 집이었다. 남학생이 꺼내놓은 소지품을 여학생이 선택하는 방법으로 파트너를 정하기도 했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남학생은 어떻게든 다시 만날 약속 ‘애프터’를 받아내려 연락처를 물었다. 전화번호를 받아내기는 쉽지 않았고 주소만 알아내도 성공이었다. 다음 날 주소 적는 간지 속에 몇 자 써서 학교 신문을 여학생이 알려준 학교 주소로 보냈다. 그녀가 답장으로 자기 학교 학보를 보내주면 나를 친구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단톡방이 오랜만에 왁자지껄하다. 책을 잘 받았다는 감사 겸 출간 축하 인사다. 글쓴이의 정성과 인고의 결과를 문우들에게 선보이는 시간, 내용과 별개로 책을 받는 사람은 즐겁다. 보낸 쪽은 향후 반응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반반일 것이다. 휴일 아침부터 대화창을 도배한 어른들의 수다가 유쾌하다. 공휴일엔 우편물 배달이 없는 줄 알면서 다른 분들이 받았다니까 심드렁한 척 밖으로 나가 편지함을 뒤진다. 없다.
그러고 보니 하루 전 토요일 조간신문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당을 가득 채운 풀숲, 텃밭 가장자리와 매화나무 밑, 데크 위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진다. 역시 없다. 본의 아니게 가끔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려니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웬만한 정보 확인이 가능한 시대, 그러나 종이신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날로그 방식을 접지 않는 한 나를 계속 괴롭힐 고질병이다. 다 좋은데 도착했어야 할 책이 오지 않았고 전날 신문까지 행방불명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와 아내 간에 왔느냐 묻고 아니라는 대답이 반복됐다. 온라인 대화방에서는 어제 얘기의 연속이다. 축하, 감사, 귀한 책, 멋진 제목, 좀 전에 도착... 늦은 오후,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같은 대답,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나 예측 안 되는 미래, 그런 것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신문사에서 일괄 인쇄하던 시절의 조간신문은 트럭에 실려 밤새도록 전국 보급소로 운송했다. 새벽 대여섯 시, 늦어도 7시쯤 배달된다.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주요 거주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이른 아침 ‘신문이요~~~’ 외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현재는 IT산업과 인터넷 발달 덕에 지국별로 인쇄를 진행한다. 보급소 대표자에 따르면 밤 10시 전 원고 파일을 받아 자정 전에 인쇄를 마무리한다고 했으니 자정부터는 배달업무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하루가 지났다. 시간 단위로 물어오는 것이 귀찮은 아내가 미리 알려준다. 아직, no, 안 왔네, 오겠지. 없어. 단톡방은 여전히 바쁘다. 고맙습니다, 멋있어요, 저도 받았습니다, 소중한 책, 읽어주셔서 감사, 출간 축하. 대체 이 동네는 왜 늦는지 처음의 답답함은 초조함으로 끝내 걱정스러움으로 커간다. 그럴 리 없겠지만, 나한텐 혹시 안 보냈는지, 실수로 발송자 명단에서 빠졌나 싶어 속이 탄다.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다. 배달할 사람이 없대. 우체국 집배원을 통해 신문을 받겠느냐고 다시 묻네.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올 거래요. 몇 시쯤 올지는 모르지. 그래요? 오후에 도착하는 신문은 이제 오후 신문인가? 우린 함께 낄낄거렸다. 지금이 좋을 수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신문을 찾으러 직접 가든가, 종이 신문이라는 것이 아예 자취를 감출 수도 있을 테니.
수요일 새벽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현관 앞 어딘가 떨어져 있어야 할 신문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 잠깐 잊었다. 이제부터 신문은 우체부가 배달하리라던. 혼자서도 객쩍다. 반복이라는 언어, 습관의 무서운 힘을 실감한다. 오늘은 소포가 와서 나도 받았다고, 고맙다고 단톡방에 인사를 남기고 싶다. 다 함께 누리는 뭔가에서 나 홀로 빠져있다는 사실은 피곤함을 넘어 우울함이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나만 느끼는 소외감이라 할까.
주유소로 들어간다. 일흔 넘은 안주인이 주유관을 들고 다가온다. 돈 벌려고 나오셨느냐 웃으면서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사나흘 하다가 그만두네. 급여가 적은가요? 아니, 법적으로 줄 것 주고 웃돈까지 얹어줘도 싫대요. 힘들답니다. 듣기 딱하다. 신문보급소 사장 말과 똑같다. 문득 스치는 생각 한 점, 사람이 없다고? 그거였나, 배달 인력 부족으로 내 소포도?
늦은 밤 마당 앞에 차가 멈추더니 사람이 들어선다. 커튼 틈으로 훔쳐본 택배차에 우체국 표시가 선명하다. 마침내 왔구나. 뛰쳐나가 소리친다. 기사님, 고마워요! 아저씨가 돌아보며 거수경례를 보낸다. 차 타고 50분이면 충분할 곳을 어디서 헤매다가 지금에야. 왔으니 됐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어 신이 난다. 마흔여섯 편의 글을 쓰고 정리하고 퇴고하느라 여러 날 고생했겠다.
나의 초조와 불안보다 몇 배 더 힘들게 짜냈을 귀한 책, “은방울꽃, 너에게 주는”, 그 안에 수록된 글도 제목처럼 고울 것이다. 길었던 마음고생을 털어버린다. 일주일간 나를 기다리게 했던 뭔가가 있어 참 좋았다. 오늘은 왔을까, 틈날 때마다 학생회관 우체국 우리 과 우편함을 하릴없이 드나들던 풋내기 신입생 때처럼 설렜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