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 꽃을 보셨나요
그해 겨울은 춥지 않았고 눈발도 드물었다. 그렇더라도 땅속에서 대여섯 달을 숨죽였던 잡초들이 웬만큼 질긴 생명력 아니었다면 흙을 밀쳐내며 싹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풀뿐이었나, 늦가을 추워질 무렵 뒷밭에 엉성하게 찔러뒀던 양파와 마늘도 초록색 줄기를 올렸다. 원래 기름지지 못한 땅에 퇴비 말고는 비료나 제초제도 뿌리지 않았으니 싹을 내준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생전 처음 뭔가 심어보겠다는 사람이 밭작물 재배의 기본이라 할 풀 뽑기와 가지치기까지 생각 없이 내팽개쳤다. 성히 자라난 그들 덕분에 무지함에 더해진 나의 게으름이 조금은 덮어졌다.
뙈기밭에 지진이 일었다. 콩나물 모양의 연한 새싹이 뭉치 지어 땅을 뚫고 올랐다. 깍지 속에 남아 땅속에 묻힌 땅콩과 땅바닥에 떨어져 잠자던 꽃씨들이 싹을 낸 것이다. 생명력 강한 잡초까지 덩달아 솟아올랐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밭 한구석에 슬쩍 자리 잡은 도라지 그리고 처음 보는 들꽃 종류까지 쩍쩍 대지를 가르며 얼굴을 내밀었다.
부추와 파는 모양과 맛이 전혀 다른데도 나는 부추 얘기가 나오면 파를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파 향은 강해서 싫었다. 굵기와 색이 파와 비슷하다는 죄 아닌 죄로 부추가 내 눈에 난 거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부추 전이나 부추겉절이까지 멀리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신분제도나 연좌제와 다를 것 없다 여겨 쓴웃음을 짓곤 한다. 오이소박이를 즐겨 먹으면서 그 안의 부추 소는 남들 모르게 털어내고 먹을 만큼 싫은 건 그냥 싫다.
두 해 전, 빈 땅에 봄 채소를 심어보려고 시장 모종 가게에 들렀다. 주인 권유대로 부추 모종도 열 개를 가져왔다. 퇴비만 듬뿍 주면 알아서 자란다는 장점과 해가 바뀌어도 이삼 년쯤은 계속 싹을 낸다는 편리함 앞에서 한참을 미적거렸다. 그거 몸에 좋아요, 남자들한텐 최고야. 여에서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꾹 찌르는 한마디에 결심이 섰다. 남아도는 땅 잡초만 무성할 텐데 비워둬 뭐 하랴. 부추도 끼워 넣었다.
초짜 농부 오 년이면 두렁도 일군다. 고랑과 이랑을 이해하기까지 삼사 년 넘게 걸렸다. 쇠스랑과 삽, 호미 등을 사용하여 씨를 뿌리기 전 상태의 밭을 일구기까지는 이삼 년이 더 필요했다. 주변 농가의 농사법을 눈동냥으로 대충 배운 탓에 수확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도 채소란 채소는 대부분 심어봤다. 씨 뿌려 키우는 경우와 모종 심을 경우의 차이점도 눈에 들어왔다. 촌 동네로 이사 온 초기엔 며칠씩 걸리던 밭 고르기 작업이 그날은 반나절 만에 끝났다. 물과 퇴비까지 넉넉히 뿌렸다. 새로 온 손님 부추한테는 서비스로 한 줌씩 더 줬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대상을 돌보거나 키우는 일은, 그들을 지켜보며 보듬어줄 일련의 의무와 책임을 수반한다. 의사 표현이 서투르거나 불가능한 그들 특성상 표정과 상황으로 짐작하여 처리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생육 환경에 스스로 자신을 맞춰가는 특질이 있고 웬만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강인한 체질을 갖춘다. 부추가 그랬다. 지켜보기만 해도 무럭무럭 자랐다.
한 뼘쯤 자란 부추를 삭둑 베어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훌쩍 자란 부추를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기 시작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계속 내리는 비로 날씨는 습했고, 장마 끝 무렵엔 비를 동반한 태풍이 몰려왔다. 그 핑계를 대고 하루 한 번은 꼭 하던 잡초 뽑기를 중단했다. 풀을 뽑아야 하는 당위성이 작업의 난이도에 묻혀 뒷걸음질 쳤다.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텃밭은 미니 정글로 변하고 있었으며 잡초와 싸우기보다 포기하는 쪽이 나로서는 편했다. 부엌 창을 통해 바라보는 뒤뜰이 푸름으로 뒤덮인 자연 자체였다는 사실은 위안이었다.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한 달 남짓 힘을 키운 잡초들이 텃밭을 완전히 장악했다. 고구마와 서리태, 땅콩과 고추 위로 풀이 무섭게 올라가고 토마토와 오이 몫으로 설치한 지지대는 그들에게 사다리였다. 애들 소꿉장난하듯 심어놓은 내 채소밭을 밟아 뭉개면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텃밭을 방문하는 횟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고 급기야 뒤뜰 순찰을 멈췄다. 채소 크는 모습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던 기억은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었다. 잡초 숲으로의 발길을 접은 지 오래다. 이른 새벽, 습관처럼 부엌 창을 열었다. 달라진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옥수수 대보다 두꺼운 줄기에 총총 매달린 이파리가 그물처럼 촘촘히 텃밭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내 머리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이파리 우산 위로 난(蘭)처럼 가는 줄기들이 떼 지어 올랐다. 그 끝에 손톱 크기의 하얀 꽃까지 도도하게 피어있다. 뭐냐! 뒤뜰로 뛰어나갔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뜰 안에 펼쳐지고 있었다. 잡초 위 그물막은 국이나 떡, 나물 재료로 사용되는, 얌전히 땅바닥 옆으로나 뻗어갈 줄 알았던 쑥이었다. 쑥대밭이 뭔지를 실감하면서 꽃 달린 줄기 따라 덤불을 헤쳐 땅 아래쪽으로 더듬어 내려간다. 심은 적 없는, 처음 보는,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 거친 쑥대 숲을 뚫고 솟아오른 줄기 끝에 매달렸다. 그럴 필연성이라도 있는 걸까, 있다면 그 이유는 뭘까. 땅바닥에 닿은 내 손이 마침내 주인공을 만났다. 부추였다.
부추 꽃을 보셨나요. 산다는 일이 힘들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팠던 기억, 자신이 세상 어느 곳에도 쓸모없는 존재라 느껴 좌절했던 경험, 가슴 저린 사랑 앞에 뜬눈으로 지새운 수많은 순간, 이런저런 갑갑한 일들로 버거운 요즘의 나날들, 견딜 방법을 부추는 알고 있지 않을까요? 물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