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by 문예반장

다섯 시쯤 됐겠다. 아침잠 없는 습관 덕에 시계를 안 봐도 알람을 꺼놔도 대충 안다. 바삐 지날 하루, 모자를 덮어쓰고 집 뒤 개울 너머 휑한 벌판으로 나선다. 불과 며칠 전 건넛마을 앞까지 황금색이던 너른 들판에 이젠 때 만난 참새떼가 먼동을 가른다. 긴 밤 꼬박 차가움과 씨름했을 멀건 어둠이 구부러진 논두렁과 촘촘히 늘어놓은 볏단 곳곳에 웅크려 앉아 동트기를 기다린다. 이전과 다름없는 땅이며 하늘이 처음 대하는 풍경인 양 낯설다.

오늘은 건강검진 받는 날, 서울 가는 김에 머리까지 손질하려고 예약도 미리 했다. 아침을 건너뛰랬지! 검사 끝나고 먹을 도시락을 챙기러 주방으로 향한다. 요구르트와 샌드위치 대신 무지개떡을 집어넣고 삶은 달걀, 견과류에 과일까지 챙긴다. 우유와 자두 청, 더치 커피까지 섞은 자가 제조 음료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 위에 벌꿀과 발사믹 식초를 뿌려 젓가락으로 휘젓는다. 아이스박스 안에 몽땅 쟁여 넣고 소풍 준비 끝!


의사 선생님이 뜸 들이며 입을 연다. 마지막 내시경 검사 날짜가 오래되었다고. 손사래를 친다. 뱃속이 통째 뒤틀리는 역겨움을 견딜 수 없다고 굳이 덧붙인다. 키가 줄었다. 발꿈치를 살짝 들고 다시 재보려다 관둔다. 늙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오기일 것이다. 그런들 사실이 바뀌지 않을 줄 알아 속상했겠지, 허기가 닥친다. 병원문을 나와 운전석으로 돌아온다.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면서 나한테 묻는다. 괜찮지? 그럼, 그럼.

출근 시간이 지나 10시가 넘었건만 길바닥 위 차들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평균적으로 인구 2인당 차 한 대라 막힐 만하며 인구밀도 높은 서울 지역은 더 심할 것이다. 어쩌자고 이 자그만 나라에 이만큼 자동차가 굴러다니며, 차 없이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떨구지 못하는지. 그러나 나도 그중 한 사람임에랴. 엘리시아, 그리스 신화 속 '행복한 집'으로 머리 다듬으러 가는 길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삼 년째인 유행병, 유쾌했던 그녀의 얼굴이 어둡다. “그냥저냥 지내죠. 자, 오늘도 멋있게 잘라드릴게요.”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방송을 하지 말든지. 얼마나 계속될지 누가 알겠어. 희망적인 의견도 있다. 결국은 없어질 거라는, 홍역이나 감기 마냥 약 먹고 주사 맞아 나을 거라는 그리고 늘 그랬듯 역병을 잠재울 백신이 머지않아 개발될 거라는 둥. 거울 속 내 머리 모양새가 그새 말끔해졌다. 그녀의 얼굴도 조만간 밝아지리라.

방배동을 떠나 대치동 한 아파트의 상가건물에 주차한다. 동마(銅馬)는 발음상 그렇다 치고 금마(金馬)보다 은마(銀馬)인 이유는 뭘까. 작명자는 누구일까. 세계사의 특정 시점에서 금보다 은을 귀히 여겼던 역사적 사실을 알던 사람일까. 고만고만한 가게가 밀집해 있어 재래시장을 실내로 옮겨온 듯 복작거리는 지하 식당가에서 한 끼를 해결할 계획이다. 육전 냄새 고소한 부침개 가게, 그 옆 반들거리는 찰떡도 먹음직하다. 한 접시씩 사서 집으로 출발한다.

환경미화원이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은행잎을 거두느라 바쁘다. 시골집 양철 대문 앞 옆집과의 경계선에 40년 넘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혼자 계신 엄마가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 성화를 부리면 하소연할 데 없는 형님이 넋두리를 늘어놨다. “은행잎에서 똥 냄새가 난대요. 내려와서 치우든 태우든 없애버리고 모아둔 은행은 갖다 먹으란다. 갈래?” 지난봄에 돌아가신 엄마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은행과 은행잎을 수거하라고 구청장을 닦달했을 리 없는데...

뻥 뚫린 고속도로 위 하늘이 푸르다. 암만 가을이라도 그렇지, 이건 꼬드김이다. 치명적인 설렘이며 거부하지 못할 유혹이다. 꾹꾹 눌러둔 옛사랑만큼 시리다. 요렇게 예쁜 계절이 오래 머물겠나. 겨울은 기어이 올 것이고 나는 맑았던 하늘을 그리워할 것이며 한 해가 또 맥없이 가버릴 것이다. ‘가다’는 말을 곱씹는다. 가고 오고 떠나고 남겨진, 끝내는 어쩔 수 없어 가슴 한구석에 묻혔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십여 년 전 가버린 마흔 나이 동생까지...

신중하지 못했다. 신장(腎臟)을 이식받아야 살 수 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자마자 주겠노라 덥석 수락해버렸으니. 가족 내 반대 의견은 두 가지였다. 신장을 내주면 사람 구실 못한다고 확신한 어머니가 노발대발하셨다. “하나면 충분해. 너까지 죽게 할 수 없다.” 실제로 잘못은 내게 있었다. 고혈압약 복용자는 의학적으로 신장 이식이 어렵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으면서 우애 깊고 인간미 넘치는 척했다는 일부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마당으로 들어선다. 가끔 마주치는 고양이가 눈치를 봐가며 옆걸음질로 살금살금 데크를 빠져나간다. 밥 한 번 주지 않아도 쉼 없이 마당 안팎을 들락거린다. 뒤룩뒤룩 살쪄서 동작이 굼뜬 들고양이다. 사철 밤낮없이 내 집 천장을 운동장 삼아 층간 소음을 일삼는 서생원들의 분별없는(?) 짓을 저 괭이는 자기 일 아니라는 식으로 방관했다. 나를 괴롭히는 쥐 일가족을 일망타진할 계획 따위 전혀 없는 한량이시다. 먹을 것 좀 내놓으면 생쥐 잡으러 나서려나.

오후 3시다. 점심거리를 풀어놓는다. 일전 형님과 협의하여 제사 방식을 바꿨다. 아버님 기일에 선대 조상을 함께 모시자는 것이 골자였다. 제사를 줄여 음식 준비할 일은 줄었으나 제사 음식 맛볼 일도 없어져 조금 아쉬웠는데 오늘 이번 생(生)에 포장해온 육전 맛이 괜찮다. 내일 다시 태어나거든 생선전을 골라잡아야지. 서울 구경 자주 가련다. 육전(煎) 말고라도 긴 하루든 짧은 인생이든 살아있는 동안 내 숨통을 틔워줄 뭔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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