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일러스트 여행기 000.
누구나 마음속에 특별한 장소를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동네, 작지만 아늑했던 첫 자취방,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던 우리의 아지트, 푸른 바다가 살아 숨쉬는 동해의 어느 바닷가 등. 그곳에 좋은 기억이 많을 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을 수도, 그저 스쳐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시카고는 이런저런 의미가 얽혀 나에게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 삶의 전환이 절실하던 시점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생활.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새롭게 시도할 일이 있었고 일상이 여행이었다. 초반에 빡빡한 수업 일정을 따라가느라 매일 밤늦게까지 과제와 스터디를 하면서도 즐거울 정도였으니. 철없던 시절이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으나 지나고 보면 그 또한 추억들에 은근슬쩍 묻힌다.
길지 않은 시간만에 시카고는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버렸다. 눈을 감으면 그곳의 풍경이 펼쳐지고 바람이 불어와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참 동안 시카고 앓이를 했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떤 곳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겠고, 그새 많이 바뀐 곳도 있겠지. 언젠가 시카고에 가서 그 바람을 다시 느끼고 싶다, 꼭.
그렇기에 기억에서 꺼내는 이 이야기는 지나간 여행의 후기이자, 새로이 시작할 시카고 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