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리즈 드라마 그리고 책 빼고
2022년 돌아보는 기록을 쓴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새로운 그러나 지나간 2023년을 돌아보는 순간이 오다니. 그저 하루에 집중하며 살고 있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이런저런 앱에서 결산을 해주고 이런저런 사람들의 한 해 결산을 보고 약간의 의무감이 느껴졌다. 남들이 한다고 다 해야 하는 법은 아니지만 늦게나마 (벌써 2024년이니까!) 이렇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순간들을 다시 회고하는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2023년 돌아보는 일은 핸드폰 포토앱을 통해서 했다. 쓸데없는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기억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이미지로 재생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아주 빠르게 그러나 웃으면서 2023년 사진을 다 훑어보며 작년 요약 핵심 포인트를 노트에 두 페이지 채웠다. 포인트 제목 자체가 작년 한 해의 라이프 스타일, 관심사를 잘 요악해주는 것 같다.
올해 관심사: 습관 및 시간 관리 방법론.
올해 가장 잘한 일: 올해 관심사에 따라 초여름에 서울에 갔을 때 만다라트 계획표를 알게 된 것도 있고 이런저런 시간 관리 방법론을 적용해 보고 그 유명하던 제임스 클리어 Atomic Habits도 마침 읽게 되었고 무엇보다 하루에 한 번 좋은 습관 관리해 주는 앱이 없을까 해서 찾은 게 데이스탬프인데, 너무너무 잘 만들었다! 프로그램 만드신 분이 탁월한 디자이너와 작업한 것인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으신 것인지 전반적으로 사용자 경험 수치가 매우 높다. 색깔 선택부터 시작해서 직관적인 사용성. 그리고 깃 환경에서 푸시된 코밋 기여 상황을 한 눈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처럼 연간 실천 기록을 보여주는 피쳐가 제일 마음에 든다. 모두에게 추천해요.
올해도 작년처럼 한 일:
- 1월 말에 호러 및 판타스틱 영화제가 열리고 작은 스키장이 있는 프랑스 북동부 제라르메 도시에 들려 영화도 보고 같이 간 커플 친구와 보드 게임도 하고 스노라켓 신고 정적만 넘치는 눈 쌓인 산 산책도 하고.
- 8월에는 여름 별장이 된 시엄마 친정집 프랑스 정남부에 위치한 읍 혹은 면 단위의 라그라스에 들러 문학 연회 방문. 아침 10시에 개울에서 독서 및 선탠. 기가 막히는 까르보나라로 점심. 꿈의 집인 옆 집에 영어권 젊고 섹시 인텔리 커플이 이사 와서 인사 및 안면을 트었는데 그 작은 연령층 매우 높은 시골에서 1살 정도 된 딸과 연중을 거기서 오래 살기를 바란다.
- 기간은 따로 없고 보르도에서 여름휴가 연장을 했는데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 살고 싶다.
- 2023년 보졸레 누보 마셨다.
올해의 날씨: 비. 웬 비 사진과 비디오를 그렇게 많이 찍었는지 연중 내내 비가 많이 왔다. 실내에서 보는 비야 매우 낭만적이지. 11월-12월 중에는 파리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감정적으로 괴로웠지만. 올해의 비로는 6월에 서울 샤부샤부 음식점에서 엄마와 함께 홍제동 언덕을 바라보며 내리는 비로 꼽겠다.
올해의 운동: 창피하지만 올해는 습관적인 운동 실천을 거의 하지 못했다. 여행 갈 때마다 시간이 나서 하게 된 그나마 운동적인 것은 등산과 이사오기 전 동네에서 여름밤마다 치던 탁구.
올해의 식단: 이 나이 되어서 아이도 없고 부모님 및 조국과 멀리 떨어져 살며 일만 하는 인생이 될지 몰랐지. 요리할 시간이 없어 올 한 해 올리브 치킨의 순살 치킨과 파이어 타운의 마파두부를 제일 그리고 맛있게 많이 먹었다.
올해의 음주: 집에서는 금주하고 싶었지만 잘 안되었고 이런저런 집 안/밖에서 와인 많이 마셨으며 와인 외에 마신 것은 하이볼. 집에서도 마시고 싶어 하이볼용 얼그레이 시럽까지 샀지만 올해에는 시도하지 않았다.
올해의 커피: 친정 집 앞 세겐의 아이스라테. 자주 가지 못해 더더욱 애틋함.
올해의 루프탑 바: 이태원 어글리 소사이어티.
올해의 서점: 연희동의 밤의 서점. 올해 알게 되었는데 알게 되자마자 몇 주 전에 신촌동 쪽으로 이사 가심. 어차피 자주 가지 못하니 덜 슬프다. 약 한 달에 1번 정도 나이트북스 소사이어티 뉴스레터를 발행하는데 읽고 계시는 책과 추천하는 책을 에세이처럼 써서 보내주신다.
올해의 변화: 9월에 이사했다. 전 집에서 2년 정도밖에 살지 않았는데 소음 및 집주인 문제로 이사 결심. 그러나 여전히 14구에서 벗어나지 못함. 전에 살던 곳에서 걸어 15분 정도 걸리는 14구 시청 주변으로 옮겼는데 오스만 스타일 건물이 많은 큰 도로라 전에 비해 복작거리고 아기자기한 주변 환경은 잃었지만 집안 실내 환경은 나아졌다. 조용해진 침실과 최적화된 나만의 재택 공간.
올해의 문화생활: 작년에 비해 박물관/미술관 등 방문을 이곳저곳에서 했는데 그중에서도 서울 시립미술관, 라호쉘의 아쿠아리움, 브뤼셀의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그리고 파리의 과학 및 산업 시테에서 본 군중을 연구하는 유투버 Fouloscopie 전시가 좋았다. 반면 연극은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올해의 생일파티: 영화업 종사 때 알게 된 15년 정도 된 친구 독일영국프랑스계 친구 한나의 생일 파티를 파리 그라운드 컨트롤에서 했다.
올해의 기이한 경험: 오렌지 와인. 오렌지로 만든 와인이라서가 아니고 색깔 때문에. 화이트 와인 만드는 포도 품종을 즙과 껍질과 같이 만들었다고 함. 맛에 대한 좋았던 기억은 안 나지만 다시 마셔볼 의향은 있다.
올해의 정치사건: 프랑스 노동개혁법 통과. 프랑스 현 정권에 여러모로 정 떨어지고 손사래 치게 만들었다.
올해의 재발견: 그르노블 도시. 16년 만에 다시 돌아가본 내 프랑스 첫 도시인데 이렇게 좋은지 그때는 몰랐지.
올해의 관광: 파리 14구에 산지 15년 만에 바로 코 앞에 있는 몽파르나스 타워 루프탑에 처음 가봤다. 사촌 동생 출장 및 여행차 같이 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좋은지 이제야 알았지.
올해의 고기: 난 식당에서 스테이크는 웬만하면 잘 안 먹는데 라그라스에서 2킬로짜리 립 스테이크(côte de boeuf)를 둘이서 그것도 두 번이나.
올해의 숙소: 올해 여름에 방문한 곳 숙소들 다 좋았는데 그중 보르도와 엉두즈에서 머문 숙소를 잊을 수가 없다.
올해의 노을: 상암동 방송가 건물들 뒤로 넘어가던 초여름 서울의 노을.
올해 제일 이루고 싶었지만 전혀 못한 일: 쓰고 싶어서 방법론 및 아뜰리에 경험 등은 했지만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