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전 팀에서 같이 일하던 프로덕트 매니저 마고의 환송회가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한 지 5년이 되어가 안식년을 내고 워홀로 남자친구와 호주로 떠나는 것이니 완전한 헤어짐은 아니었지만 환송회 자리를 준비했으니 뒤로는 환송회비도 걷고 카드도 사서 메시지도 남기는 전형적인 환송회 세리머니를 다 갖췄다. 코비드가 좀 한창일 때 이 회사에 들어와서 일한 지 곧 3년이 되어가는데 지금까지 마고를 위한 액수만큼의 환송회비가 걷힌 것은 처음 봤다. 물론 내가 모든 환송회비에 다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액수로 봤을 때도 무시할 금액이 아니고 4명의 공동 창업자 중 두 명이 참여했으며 A4 용지 크기 카드에는 각각의 사람들과 쌓인 우정을 보여주는 맞춤화된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이 정도 규모의 환송회는 전 직장에서 꽤 많이 있었다. 코비드 전의 시대에는 서로 간의 육체적/심리적 거리감이 지금보다 확실히 적었고 회사 앞에 바로 직원들용 술집으로 지정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서로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비드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독보적으로 많은 이들이 마고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녀의 새로운 출발을 바라주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표현을 한 셈이다.
마고는 유독 특별한 스타일이긴 한데, 과들루프에서 프랑스로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이라 과들루프의 전형적인 유쾌함이 본연에 깔려있다. 그렇게 항상 굉장히 유쾌하고 친절하며 웃고 노래하고 춤추길 좋아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댄스 모임에 나가던 게 내가 아는 그녀의 마지막 취미였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알고 있던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게 되는 (현실과 상관없이 얼토당토 않은 그러나 18금인) 소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파리 근교 살던 동네에서 미스 딸기로 선정되는 등 같이 있으면 끊아자 않는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세기초 혹은 그전 광고에 나오는 많은 프렌치 팝들을 꾀고 있어 한 소절만 들어도 바로 그 뒤를 줄줄 따라 부를 만큼 열렬한 애창가이기도 하다.
마고의 환송회에 앉아서 로제를 마시면서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많은 이들에게 애정받는 사람들. 성격 좋은 사람들. 인간관계가 매우 넓어 항상 바빠 약속 잡기 힘든 사람들. 그 넓은 인간관계 유지가 가능한 능력이 내겐 부러웠던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특별히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여러 가지 사고 단계와 이유를 거쳐온 것 같다. 처음에는 내 까칠한 성격에 대한 문제 자체를 못 느꼈기에 고칠 필요를 못 느꼈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까칠한 성격에 대한 인지를 했지만 그게 내 모습이라 생각했기에 나의 단점을 끌어 안기로 했다. 대신에 나를 굉장히 굉장히 좋아했던 (어린 시절에는 "우상 했던"이라고 해도 될법할) 여자, 남자들이 항상 있었다. 넓은 관계보다는 깊은 관계들을 유지해 왔고 넓은 관계도 깊어질 수 있고 깊은 관계도 얇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요즘에는 내 까칠한 성격을 둥글게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있다. 모르는 인연, 친구, 연인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까지 모두 적용해서 말이다. 어떻게 덜 모날 수 있을지는 만다라트 계획에 넣어 매일같이 실천하려고 하는데 현실은 둥그레져 가기보다는 너 참 오늘도 모났었구나 쯧쯧 인지하며 매일같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용으로 쓰이고 있다. 다만 나만의 사적인 공간과 시간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아직 변하지 않아서 그게 누구이건 타인과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는 (주로 몇 시간 정도가 최대) 아직은 나만의 굴로 들어가서 지내야 되는 패턴을 바꿀 수가 없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은 내 숨통이라 정기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 점점 나도 모르게 모가 생기는 것이다. 넓게 사랑받는 사람들에게도 자기들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오늘도 마고처럼 둥그랬던 하루였나 생각해 보고 다수에게 사랑받는 것과 소수에게 사랑받는 것 중 정말 내가 1. 원하고 2. 할 수 있고 3. 감당할 수 있는 관계는 어느 것인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