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의 연속
2022년은 며칠 부로 이미 끝났지만 아직 머릿속에 붙잡아 둔 지난 한 해 정리 목록 마지막으로 마무리 짓는다. 2022년은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화해, 존경 그리고 애정으로 물들었다. 다양한 이유로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 인연도 각각이다. 마음이 상해서 연락이 단절된 후로 오랫동안 못 만난 후배, 어차피 자주 보던 관계는 아니지만 기회가 닿아서 만난 모교 인연, 그 당시에는 만나던 사람이 아니지만 기회가 되어 만난 후 여러 번 만난 선배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지만 다시 만나고 싶어서 만난 전 직장 동료 등. 이제는 10년 이상 더 된 관계야 수두룩 하지만 10년 이상 못 본 관계들도 많아지고 있다니 햇수를 해면서 그저 놀라울 뿐. 이렇게 정리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연락을 하지 못해 잠시 멀어지고 있는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는 인연들이 있겠지. 만난 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어 본다.
화해
오랜 시간 단단하게 뭉쳐 쳐서 풀리기 힘든 오해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만나서 화해와 용서를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되지 않았고 시간만이 약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는 한 해. '언니, 나 볼 일 있어서 파리 가니까 한 번 보자.' 먼저 연락이 왔다. 너무도 좋아하고 의지하며 지내던 사람과 다시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할 때의 좌절감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여러 해에 걸쳐 가끔씩 하던 문자와 전화를 통해 마음속의 짐이 덜어졌고 굳이 특별한 것을 나누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도 파리-니스의 지리적 거리감이 웬만하지 않아 굳이 성사되지는 않던 해후. 10년 넘어서 다시 만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후배는 한 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젊고 경쾌하고 크게 웃고 동네가 떠들썩하게 말하는 모습이 10년 전, 20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같이 술을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랬다면 술 취해서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고 하면서 그래도 울고 웃고 했겠지.
존경
멀리서 지켜보며 그 모습에 반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고상하고 눈부셔서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를 뒤로 달고 다니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나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에게 나야말로 정말 당신을 그렇게 바라봤다고 전했다. 홍대 미대 특유의 까칠함과 도도함은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은근한 섹시함 뒤에 보디가드처럼 붙어 다녔는데 10년 넘어서 파리 9구의 어느 바에 앉아 대화하며 살펴보니 그 보디가드들 당당함과 겸손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침 11월에 서울에 들어갔을 때 또 찾아뵈었다. 멀리 살면서 1년에 두 번이나 보게 된 데에는 내가 이 사람을 만날 때 받는 영감이 소중해서이다. 다음은 언제 어디서 일지 몰라도 계속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겠어요.
애정
지난 몇 년간 까칠하게 마른 장작처럼 살아오면서 인생의 목적은 남녀 관계 이상에 숨어있다고 여러 번 되뇌어 봤다. 자위적인 생각이었다. 의미와 설렘 없이 사는 일상이라 일에 더 빠져들었는데 한창 커리어 전향 후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것도 있으리라.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실망하며 살아왔지만 이렇게 아무에게도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날들은 처음이었다. 나 딩크족인데 이렇게 비로소 팍팍하고 재미없는 40대가 되어가는 것인가. 위기를 맞은 결혼과 지반을 단단히 잡아놓아야 했던 새 직업이 가져온 혼돈의 시기가 지나가고 마음의 안정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을 때 첫 직장 동료와 만남이 생겼다. 첫 직장이라 하면 17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17년이면 어느 중학생의 인생 전체보다 오래된 시간이다. 17년간 한 번도 안 봤다면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됐는데 깊이 묻어둔 호기심과 애틋함이 불쑥 튀어나왔다. 연력이 생겨서 부담과 기대가 줄어든 것도 있다. 그렇게 17년 전 하던 것처럼 다시 술자리를 만들었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그를 새삼 알아가고 그 당시의 우리와 또 오늘의 나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나는 아직 다시 불탈 수 있는 장작이라구. 화해하고 존경하는 만남처럼 이 역시 기약이 없는 관계이지만 마음 깊이 애정하고 있다.
눈가 주름과 흰머리 생기는 만큼 올해도 2022년처럼 화해하고 용서받고 존경하면서 그리워하는 삶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