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기다림 끝에 받아 든 결과.
고3 때 사실상 이미 내 병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검사를 받고 정식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대충 내가 어떤 병이라는 건 알았으니 딱히 진단은 필요하다 생각지 않았었다.
대학 2학년쯤 무슨 마음이었는지, 굳이 내 병을 진단받겠다고 병원을 알아봤다. 아마도 병을 진단받고 나면 앞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미 진료받으면서 들은 이야기로도 크게 상관없었지만, 이 분야에서 나름 잘한다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진단을 받으면 나는 장애인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되니 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어떤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근육병을 진단받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검사가 있다. 혈액검사와 근전도 검사. 심전도검사도 하지만 대표적 인건 앞에 두 가지 검사이다. 혈액검사는 흔히 건강검진받을 때 혈액을 뽑는 것처럼 대략 3-4병을 뽑아간 것 같다. 그리고 문진을 하면서 이것저것 동작을 시켜본다.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보세요”
(앉은 상태에서) “무릎을 위로 올려보세요”
“앉았다 일어나 보세요”
“학교 다니면서 수업이 잘 이해가 안 가거나 성적이 지나치게 낮다거나 하진 않나요?”
동작을 하면서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그럴 때쯤 들어온 질문에 머리한대를 맞은 듯했다. 대체 이건 무슨 질문이지?
이땐 대학생이었으니,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어서 수업에 대한 이해도나, 학교성적은 어떤 편이었는지 물어봤는데 이때 물어본 질문이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사람이 모자라보이거나 내가 공부를 못하게 생긴 건가 싶어 살짝 욱하는 마음이 들었고, 표정관리가 잘 안 됐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을 수도 있지!) 라고 마음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 그러다 약간 어이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상위권은 아니어도 보통은 해요.”라고 나름대로 쿨한 척 답했지만 솔직히 공부를 잘하진 않았어서 마냥 기분 나쁘기만 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 질문도 원래 있는 건지 물어보니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간혹 지적능력에도 이상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사전에 문진을 먼저 해보고 이후에 추가검사를 하는 듯했다. 똑똑하진 않더라도 더 문제가 없는걸 다행으로 여겼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누군가는 이 상황에 다행이라고 여기고 누군가는 슬플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씁쓸해졌다.
근육병 진단하는데 하이라이트는 근전도검사였다.
가급적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검사였다. 태어나서 처음해 본 검사였는데,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전기자극이 갈 수 있는 패치 같은걸 몸에 이곳저곳 붙였다. 허벅지, 팔, 발목, 등 이곳저곳 붙은 패치를 통해 전기자극을 주고 신경이나 그 주변근육에 반응을 보는데, 바늘로 몇 군데를 찌르고 돌려서 자극을 주는 검사였다. 전기자극도 모자라 고문도 아니고 거의 두 시간가량을 곳곳에 검사를 하고 나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어차피 받아야 하는 진단이라고는 하지만,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파가면서 받아야 하는 검사라니..!
이왕이면 검사에 고통이 수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검사실을 나왔다.
진단을 받을 당시만 해도 내 혈액은 멀리 일본까지 건너가야 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 병을 정확히 진단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진단 결과를 기다렸다. 중간에 일본으로 보내진 혈액이 문제가 생겨 다시 검사를 하고,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났을까 정확한 확진이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근육병이 맞네요, 타입은 알고 계신 대로고 이 타입은 수명에 지장이 없어요.
관리하기 나름이지만 나중에 휠체어를 탈 수도 있고,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호흡체크도 해주세요. "
1년여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늘 생각하고 있다가도, 별일 아닌 척 지내기도 했다.
결과를 들었을 때 알 수 없는 용어들과 어떤 유전자가 변형이 돼서 문제가 된 건지 이야기를 다 들었지만, 나오면서 머릿속에서 모든 내용이 날아갔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말들만 귓속에 맴돌았다. 확실한 진단을 받았다. 전에도 들었지만 더 선명해졌다. 내가 근육병이라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