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에서 감속으로
초, 중학교 체육시간이 되면 유독 그 시간을 괴로워했다. 기억이 나는 게 있다면 초등학생 때 난 체육시간에 나름대로 핑계를 대며 수업을 빠지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단순히 체육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따라가기가 힘들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체력장을 할 때면 오래 달리기가 너무 버거웠고 앞 구르기를 하면 구름과 동시에 대자로 누워버리곤 했다. 유독 또래친구들보다 뒤처졌는데 지금생각하면 너무 창피한 순간들이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 역시 체육시간을 피할 방법을 생각하면서, 체육과목에 대한 성적은 아주 뒤처진 채 졸업을 했다.
고등학생이 돼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내 몸에 문제가 있구나, 내심 이상하다 생각하고 의심도 했었다. 이때부턴 뛰는 것이 되지 않았다. 엉성하게 되긴 했지만 자칫 넘어지기 일쑤였고, 걸을 때 오른쪽 발목이 아래로 늘어지면서 쳐지기 시작했다. 팔을 들어 올리는 건 이전부터 되지 않았지만, 안된 지 오래됐던지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발목이 늘어지는 증상은 걷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인터넷으로 내가 가진 증상들을 검색하며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내 증상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진행성이고, 걷다가 점점 못 걷게 되는 등 타입에 따라 수명은 20세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근력이 약해지다가 호흡기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 무시무시한 말들에 놀라 인터넷 창을 급히 꺼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기 전 펑펑 울고 말았다.
내가 가진 근육병의 타입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튀어나온 어깨 날개뼈, 근력의 힘이 점점 약해지면서 나중에는 휠체어롤 타게 될 수도 있다고. 근육병이라고도 하고, 근이영양증이라고도 한다. 관련 커뮤니티 카페가 있어 가입도 하고, 글도 남겼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근육병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곳에 근육병 당사자 한분과 이야기를 한 끝에 역시 내 증상이 근육병이 맞는 것 같다고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하게 알고 싶었지만 검사할 상황이 되지 않아 근처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정도만 받았다. 관련된 과로는 신경과였고, 머리가 흰, 나이가 있으신 교수님께 진료를 받았다. 처음 팔을 들어 올리는 행동을 해보고 증상을 이야기하는 등 이것저것 움직임을 시키셨고, 그런 끝에 교수님은 내 병에 대한 대략적인 진단을 말해 주셨다.
“근육병이에요, 지금 학생인가요? 일단 얼굴에 영향이 있는 FSHD라는 타입입니다. 이 타입이 얼굴근육을 잘 쓰지 못해 표정변화가 없는 편이에요. 증상은 팔다리 한쪽만 올 수도 있고 양쪽 다 올 수도 있고요, 근육병중에서도 얼굴근육이 약한 타입이죠”
스스로 그동안에 의문을 가지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았다. 내가 근육병이기 때문에 그동안 안 됐던 행동들에 대해 퍼즐조각이 맞춰졌다. 조금 다른 것뿐인데 마치 내 얼굴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동물원에 원숭이를 쳐다보듯한 사람들의 불편했던 시선, 남들보다 행동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정밀검사를 한건 아니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몇 가지 동작과 문진으로 어느 정도 판단 할 수 있는 증상이기도 했으니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할까 싶기도 해서 병원은 더 가지 않았다. 의사 역시 검사하면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까지 말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병은 진행성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에 대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나와서 다리에 힘이 풀려 로비에 앉았다. ‘얼마나 나빠지는 걸까, 지금도 아주 빠르진 않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느렸고 엉성하지만 뛸 수도 있었는데, 이제 점점 더 느려지겠지?‘, ’ 요양병원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나?‘, ’ 돈은 어떻게 벌지?‘ 하며,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는데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이 마치 나는 아무것도 못한 채 갇혀있고, 사람들만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솔직히 의사가 해준 말들은 모두 예상했던 말이었다. 인터넷으로 많이 찾아보고, 커뮤니티 카페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들은 이야기였으니, 이미 한번 펑펑 울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어느 정도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병원에 갔으니까. 같은 말을 들어도 담담할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병원에 갔다.
하지만 세상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했던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난 앞으로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녀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속도를 내고 점점 올라갈 텐데, 그와 반대로 점점 느려지는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시간이 빨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느려지고 달라질 내 모습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