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시대>란 영화가 있다. 1988년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지만 희수는 ‘성공’이란 말에는 성공시대가 떠오른다. 그 영화의 포스터에는 그렇게 적혀있다. ‘성공을 위해 사랑도, 의리도, 자기 가슴마저도 배신하는 시대’. 성공이란 의미는 그런 이미지로 틀에 박혀 있어서 일까, 희수는 성공이란 말만 들으면 귀 뒤의 여린 살에 작게 소름이 돋는다. 희수가 살아온 40을 채워가는 인생에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가 성공 아닐까.
하지만 희수에 마음 속에도 늘 무언가 성취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왔다. 어릴 적 희수는 막연하게 성공해서 부모님을 좋은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꼬마 희수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그들을 웃게 하는 일, 설거지나 청소를 싹 해두고 그들을 기다리는 일 정도였다. 희수는 늘 케이크의 큰 조각을 얻고 싶었다. 성공이라는 것도 남들에 비해 아주 커다란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볼수록 자신에겐 기대만큼 그걸 이뤄낼 힘이 없어 보였다. 큰 성취를 위해 사랑도 가족도 자신마저도 눈 질끈 감고 마음 밖으로 밀어낼 자신이 자신에겐 없어 보였다. 대신 희수는 성취라는 걸 밀어냈다. 성공이라는 건, 매정한 거야.
희수의 마음에 무언가 성취하고 싶거나, 성공해내고 싶은 욕구가 떠오를 때, 그녀는 그게 불편했다. 그런 거,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희수도 좀 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었고, 좀 더 좋은 직책을 얻고 싶었다. 늘 자신이 가진 건 부족해보이기만 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무언갈 인정해주면,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비죽 위로 솟았지만, 저 말이 진심일까, 의심을 내세워 기쁜 기분이 더 커지지 않게 억눌렀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희수는 이런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먹먹했다. 막막한 걸까. 희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 속을 헤엄치며 허우적, 살고 있었다. 자신이 향해 가는 곳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처음 그걸 알았을 때, 희수는 적잖이 놀랐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싶었던 걸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것이다.
희수는 자신이 성공에 씌운 검은 막을 휙 들어 벗겼다. 회색의 미세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 안엔 정말 잘 살고 싶었던 희수의 마음이 폴딱폴딱 뛰고 있었다. 너무 꽁꽁 감싸 감춰뒀기에 거기 있는지 몰랐던 마음. 그 마음이 거기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희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던 자신의 행동, 불연듯 일어나던 감정들의 일부 조각이 이해되기도 했다. 잘 살고 싶었던 마음이 비죽 비죽 올라왔던 거였다. 희수는 잘 살고 싶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희수도 성공해 자신이 원하던 모습을 이루고 싶었다. 정돈된 주변, 잔잔한 일상, 우아한 행동,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일, 사람들에게 미미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 희수는 이것이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당연한 모습이라 믿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만 없는 당연한 모습에 슬퍼했다. 희수는 이제 그것들을 갖기란 모두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들을 지켜 나가기란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