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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Jul 03. 2020

유산, 그 이후의 마음

보이는 것은 그대로이지만, 어쩌면 많은 게 달라졌을지도   


김포공항, 

유산 후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제주도에 혼자 내려가기 위해 공항엘 갔다. 면접을 보기 위해 먼저 급히 제주도로 내려간 남편을 따라 제주 바람을 쐬고 오려고. 탑승을 기다리며, 공항에 앉아 있다 나는 그만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정확한 이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그곳에 엄마 아빠 품에 있던 아기들을 보다 내 생각은 발리 공항에 휠체어를 타고 있던 내 모습, 실리듯 비행기에 태워져, 겨우 한국으로 돌아왔던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건 마음이나 생각에서 기인했다기 보다, 그냥 몸 자체가 기억하는 감정이었다. 그땐 혼자 공항에 앉아 훌쩍이는 나를 부끄러워 할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가 안타까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위로해주기에도 마음이 모자랐다. 


퇴원 후 나는 '무조건 푹 쉬어야 한다'는 말로 무장하고, 이번 기회를 삼아 체력 재정비를 삼기로 했다.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 열심히 복용했고,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편히 먹고 맘먹고 요양을 했다. 프리랜서로 하던 일도 막무가내로 멈췄다. 온전히 내려놓는 것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게 나 하나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거 참 잘했네, 생각이 든다.


유산이라는 경험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이 들게 되는 모양이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 역시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 생각을 더 열심히 스스로를 챙겨주면서 이겨냈다. 그리고 슬픈 만큼 많이 슬퍼했다. 눈물이 나면 충분히 울었다. 


그런 자책의 마음은 그 이상으로 깊이 빠져들면 안된다. 알아차리면 그만이다, 

내가 자책을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것을 받아들이고, 알아차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알아차린 그대로 놓아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 생각에는 답이 있거나, 사실을 가려내야 하거나, 나 대신 누군가를 탓해야 끝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유산도 나에게, 혹은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고, 지나쳐가는 일 중 하나로 받아 들여야 했다. 

그리고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정말 아기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좀 더 탄탄하게 준비할 시간을 준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만한 일을 이만하게 받아들이고 겪어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걸 감사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다시 둘러보게 됐고, 가족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아이를 낳은 이들이 위대해 보였다. 존경심이 생겼다. 겪어본 일에 대해서는 보다 온전하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다. 

유산보다 더 대단한 출산을 겪어낼 날이 나에게도 올거라 믿고, 그날에 또 그만한 인내와 공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힘을 길러야겠다. 



2019.05.17 쓴 글을 편집했습니다. 



다시 보니 마무리 글을 정리하지 않았길래 이제라도 올려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유산과 관련한 글을 읽으셔서 놀랐습니다. 

유산이란 사건은 시간을 타는 일이 아닐테니, 

여전히 지금 막, 이 일을 겪고 힘든 마음으로 글을 읽으시겠구나,란 생각드니 마음이 아프네요. 

돌아보니, 제가 겪은 유산도 1년이 훌쩍 지났네요, 

시간 앞에 기억도 많이 흐려졌지만, 오랫만에 발리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아직 약간의 슬픔이 남았구나, 싶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조금 의심스럽지만, 약물 배출 후, 1개월이 지나 병원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3개월 정도 이후부턴 다시 임신을 시도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벌써 1년을 보내고 말았네요, 기분 탓일지 모르나 

저는 유산 후 배란 주기가 더 일정해진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나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들께 좋은 소식이 찾아오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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