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를 위한 위로
p40
먼저, 그녀가 첫 번째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하나도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때 비로소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다음 단계의 해결책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다음과 같은 불교 잠언이 있다.
'어둡다고 불편한느 것보다 촛불을 켜는 것이 더 낫다.'
고민하는 대신 언제나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최소한 그 무엇인가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잠시 평화롭게 앉아 있는 일이라도 할 수 있다.
p52
(중략)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그때 깨달았다.
보자기에 싸인 소중한 보석처럼 아버지의 말씀 속에는 내가 아는 가장 분명한 사랑의 표현이 담겨 있었다.
“아들아, 네가 삶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든
이것을 잊지 마라.
‘내 마음의 문’은 너에게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 사랑에는 어떤 조건도 단서도 붙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의 아들이었으며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사랑은 아름다웠다. 또 진실했다. 아버지는 진실한 마음으로 그 말을 하신 것이다.
(중략)
누군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의 문은 당신에게 열려 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훨씬 더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만큼 오랫동안 나와 함께 지내온
나 자신이여,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든 상관없이
내 마음의 문은 나에게도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오라.”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름하여 ‘자기 용서’라 불린다. 그것은 자기 비난의 감옥에서 자유롭게 걸어 나오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평화로워지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할 용기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그 고귀한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더 나아지고 높이 비상할 것이다.
어느 날엔가 우리 모두는 그냥 한 번 해 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정직하게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동안 거부당한 채 너무 오래 바깥의 추위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일부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다. 그때 우리는 온전하고 자유로워진 자신을 느끼고 행복해진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사랑할 때만이 그것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아무 결점 없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런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한다. 일단 자신을 안으로 초대하면 그때 우리는 완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