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지나고

우리 선비, 10대와 성품을 노래하다

by 은은



林踈空自籟(임소공자뢰) 듬성한 숲 사이로 바람 소리 절로 울리고

雨細不成泥(우세불성니) 빗줄기 가늘어 질퍽대지 않네

墮羽爭巢雀(타우쟁소작) 참새는 깃을 접고 다투어 둥지 찾고

申吭叫屋雞(신항규옥계) 닭은 목을 빼어 지붕에서 운다

飯殘飢鳥喜(반잔기조희) 밥을 남겨 주니 주린 새 좋아하고

釀熟亂蜂多(양숙난봉다) 술이 익으니 벌 떼가 설친다.

小圃雨初過(소포우초과) 조그만 채마밭에 처음 비 뿌리니

香蔬添幾何(향소첨기하) 향긋한 나물 얼마나 더 자랐는가

掃地林餘影(소지임여영) 마당 쓸어도 숲 그림자 남고

鋤園樹礙根(서원수애근) 정원을 매니 나무 뿌리 걸린다.

人閑如老衲(인한여로납) 사람이 한가하니 늙은 스님 같고

地僻似山村(지벽사산촌) 사는 땅 외져서 산골 같구나

曲塢花迷眼(곡오화미안) 굽은 언덕엔 꽃이 피어 눈이 어릿하고

深園草沒腰(화원초몰요) 그윽한 뜰엔 풀이 허리까지 오네

霞殘餘綺散(하잔여기산) 엷은 노을은 비단이 흩어진 듯

雨急亂珠跳(우급난주도) 세찬 비는 구슬처럼 어지러이 튕긴다


–이규보, <우차절구(又次絶句>



이번 시간에는 이규보의 한시 <가랑비 지나고>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옛말에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들어 있다[시중화 화중시(詩中畵, 畵中詩)]”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요? 이 시를 보고 있노라면 시각, 청각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숲과 시골 풍경이 함께 떠오르지 않나요?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숲, 바람 소리, 빗줄기, 참새, 둥지, 닭이 우는 소리, 벌 떼, 채마밭(채소를 심어 놓은 밭), 나물, 정원, 언덕, 풀, 노을, 구슬 등 시골살이의 모습을 참 정겹고도 세밀하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밥을 남겨 주니 주린 새 좋아하고’라는 구절에서는 먹거리 나눔을 통한 생명사랑의 실천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양의 경전이자 고전인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는 ‘살아 있는 뭇 생명들을 살리는 이치[생생지리(生生之理)]’라고 해서 일찍이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학자인 農巖(농암) 金昌協(김창협, 1651~1708)은 미물(微物: 인간에 비해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高蔓摘未盡(고만적미진) 높이 달린 것은 다 따지 않고

留作鼪鼯糧(유작생오량) 다람쥐 먹이로 남겨둔다네

- 과일을 따다[摘果(적과)]


선현들은 다람쥐, 까치, 까마귀, 들쥐, 닭, 토끼, 고양이, 개, 소, 말 등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든 밖에서 생활하는 들짐승과 날짐승이든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생명을 지닌 개체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며 돌볼 줄을 알았습니다. 이들과 공존할 줄 아는 지혜가 곧 자신과 지구 생명공동체를 살리는 길임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의 배를 조금 더 불리기보다는 내가 조금 적게 먹더라도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생명 존중의 넉넉한 마음씨와 친절, 품격이 베어 있는 생활을 실천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주변 사물과 생명에 대해 애정이 없다면 위와 같은 시어라든지 자연의 모습을 담은 시 또한 나오지 못했겠지요. 또한 생명에 대한 감수성, 생태에 대한 정감 어린 시선과 공감하는 마음이 없다면 시적 마음 또한 발현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는 그 시대의 문화와 지역, 풍속,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그릇입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접할 때 마음이 편안하듯이 내가 평소 담고 있는 말의 씨앗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도 결국 우주 대자연의 극히 일부분이니까요.


10대 생각


·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혼자 모든 것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생명을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밥주기, 씻기기, 재우기 등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 일은 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 그래서 엄마의 정성과 헌신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처럼 경험해 봐야지만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잊고 있던 비 오는 날의 풍경, 여름 장마철의 풍경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다이어트한다고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몰랐는데 ‘밥을 남겨 주니 주린 새 좋아하고’란 시구를 읽고 음식이 없어서 못 먹는 애들도 있는데 나는 먹을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생명을 돌보다 보면 조금이라도 마음 정리가 되고 위로가 된다. 어떤 생명의 처지가 곧 나의 처지로 바뀔 수도 있으므로 저 생명이 바로 나이자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공감하며 도와줘야겠다.


·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숲과 시골에 가고 싶다. 생명은 소중하고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나누어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생김새만 다를 뿐 똑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생명들과 먹거리를 나누며 그것에 대한 사랑을 더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생명을 돌봄으로써 오히려 그것에게 큰 도움과 위로, 많은 힘과 지지를 받게 됨을 알 수 있었다. 내 언어의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 시에서 시골의 풍경 소리, 평화로운 빗소리, 숲, 언덕들이 나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평소 그냥 스쳐 보내던 것들에게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 우리도 뭇 생명과 하나이고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나누며 돕고 살지 않는다면 이 지구는 멸종되고 말 것이다. 또 서로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뭇 생명들은 우리에게 많은 좋은 일들을 베풀기에 우리는 그들과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 어느 한 생명이 사라지거나 힘들어지면 그 빈자리를 채우기가 힘들어진다. 그러기에 어느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는 마음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지은이와 이 시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내가 조금 먹더라도 이웃과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나눌 줄 아는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구의 자원과 식량은 유한하므로 나누며 더불어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 뭇 생명도 우리도 똑같은 생명 가진 존재이기에 이들이 있어야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높고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모두 똑같기에 서로 공감하고 돌보며 자신과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뭇 생명과 먹거리를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생명을 돌보고 이들의 처지에 공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거진의 이전글숨 세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