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우리 선비와 성품을 노래하다
매사에 선한 일을 행하기란 어렵습니다. 평소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그 실천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다면 마음 내기가 더욱 힘이 들 것입니다. 더구나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누군가 하겠지’,‘내 일도 아닌데’,‘나의 선의가 저 사람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라고 고민하고 의문을 품는 사이 호의를 베풀 기회를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여기 아버지의 유언을 힘써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애쓴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정조대 명재상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입니다. 그의 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每事盡善(매사진선) 모든 일에 선을 다하라.
-번암(樊巖) 蔡濟恭(채제공, 1720~1799)
선행의 실천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며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 있을 때는 말 한마디, 몸가짐 하나하나조차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기 마련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아 자리는 물론 목숨조차 보전하기 힘든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자[무자기(毋自欺)]’라야 만이 위 네 글자에 담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평소 번암을 인생 선배로서 상관으로서 가까이서 지켜보고 모셨던 다산이 그의 집 이름(매선당(每善堂: 매사 최선을 다하는 집)에 대해 기록한 글을 인용하며‘매사진선’의 어려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人不能每事乎盡善(인불능매사호진선) 매사에 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終不免(종불면) 끝내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됨을
爲不善人(위불선인)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니,
人之得成善之難(인지득성선지난) 사람이 선을 이루기가
如是矣(여시의) 어려움이 이와 같습니다
苟欲每事(구욕매사) 참으로 매사에
乎盡善(호진선) 선을 다하고자 한다면
明乎善(명호선) 선에 밝아서
而擇之(이택지) 선을 선택해야 하니
斯可以(사가이) 이렇게 하면
爲善矣(위선의) 선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 정약용, 「매선당기(每善堂記)」
다산은 번암의 인품을 잘 알고 있어 그를 추켜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의 어려움에 대해 후배로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습니다. ‘매사에 선을 다하’고자 한다면 ‘선’에 대한 생각이 자나 깨나 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루틴(일상의 반복)과 같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길을 걸을 때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듯 선에 대한 의지인 ‘선의지’를 평소 갈고 닦지 않으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선’에 대한 반감과 나쁜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곤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몸을 단속하는 방법으로 유가의 경전인 《중용(中庸)》에는 ‘십목소시(十目所視)’를 강조하였습니다. 환한 대낮이든 컴컴한 밤이든 늘 열 사람의 눈이 그대를 지켜보듯 행동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정치 입문서인 《대학(大學)》에는 ‘명명덕(明明德)’을 강조합니다. 자신이 본래 지니고 있는 밝은 덕과 지혜를 마음 수양을 통해 다시 밝히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시에서 도덕적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예로써 자신을 바로세우며 악(樂)으로써 사람들과 조화하며 자신을 완성한다[흥어시 립어례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논어(論語)》, <태백(泰伯>)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10대들의 DNA 속에는 선비 정신과 예의염치를 아는 선한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10대 생각>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이들이 선한 마음을 잘 발현할 수 있도록 선현들의 모범적인 글과 선을 실천한 사례를 많이 제시하고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대 생각
·옛날 옛적 선비들의 겸손한 생각을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나쁜 일 한두 가지는 저지르고 산다’는 문장을 읽고 평소 까불고 장난치는 사람만 어떤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고 차분한 사람, 선한 사람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채제공이란 분은 아버지의 유언을 가훈으로 삼고 평생을 실천한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모든 일에 선한 행동을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한 번쯤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선인지 잘 알고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알아주는 이도 없고, 딱히 남는 것도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공자는‘선이란 이룬 결과가 아니라 동기와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잘 새겨두어야겠다.
· 내가 지금까지 선행을 더 많이 했는지 악행을 더 많이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고 앞으로도 선행을 더 많이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박스를 주우러 다니시는 할머니를 도와 그것을 거들어 드린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할머니 댁 앞에 박스를 놓고 가곤 한다.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선행이지만 이것으로 내 마음 또한 뽀송해지게 된다.
· 남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어른이 되어 유니세프 후원과 기부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보고 싶다.
· 내가 원하거나 중요한 일만 최선을 다했는데 이 글을 읽고 매사 매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선행을 실천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주었다: 당연한 일이고 내가 맨 처음 봤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데 한 명도 줍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웠다. 앞으로도 누가 보건 보지 않건 길에 보이는 쓰레기를 많이 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신생아 모자 뜨기를 해서 아프리카에 보낸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삶을 살고 싶다고 평소 생각하였다. 이 시를 읽고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 학교에서 사랑의 빵 모금을 할 때 책을 많이 읽어서 모금을 많이 했었다. 그때 내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선행이었지만 나한테는 정말 뿌듯한 경험이었다.
· 선행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비록 선행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척 힘이 들더라도 나의 선행에 감명을 받아 기뻐하는 타인을 보면 선행을 하는 나 자신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함께 마음 따뜻해질 것 같다.
· 선행을 하면 사회와 이웃을 행복하게 해주고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따뜻한 행동을 함으로써 나의 내면과 정서 또한 깊고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선행은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나 자신의 도덕성과 사회성을 갈고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선행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일까요?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될까요?
2. 옛말에 ‘선행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