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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an 06. 2023

명상은 무비 카메라로
자신을 촬영하는 것

정작 나는 나를 모른다

  

시청 영상 상황실에서 근무한다는 아내 친구가 물었다. 지난주 화요일 오후에 어디를 그렇게 급히 걸어가셨어요? 지난주 화요일 오후요? 그때...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중앙공원 입구 쪽으로 급히 걸어가신 거 같던데. 아, 그러고 보니, 그때 공원 옆 카페에 갈 일이 있었는데, 나를 보셨나 보네요? 그냥, 긴가민가해서 줌 영상 한번 당겨봤어요. 줌이요? 네, 저, 영상 상황실 근무하잖아요.    

     

수없이 많은 카메라들이 당신을 훔쳐보는 세상이다. 폐쇄회로 카메라나 휴대전화 위치확인 기능의 발달로 당신의 사적 영역은 갈수록 협소해진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람없이 노출된다. ‘사생활 보호법’이 있긴 하지만, 대중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동선이나 영상, 개인정보 수집은 ‘국가나 사업체의 필요에 의한 밥’ 같은 신세다. 폐쇄회로 카메라에 관한 한 현대화된 모든 국가는 최소한 ‘전체주의’ 상황이다.   


휴대전화 보유자 중 하루 수신 전화 목록을 상당 부분 차지하게 된 게 ‘안전안내 문자다. 당신의 거처와 주변 시군(市郡) 서너 군데에서 당신의 안녕을 염려해주는 소식이 온다. 희망한 건 아니지만 이런 정보를 외면할 사람이 있을까. 타인의 삶이 내 개인 영역까지 이렇게 마구 투척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당신은 섬뜩한 전체주의를 상상하기도 전에, 혹시 우리 동네? 하고 살피게 된다.    

   

A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천정에서 폐쇄회로 카메라가 그를 맞이한다. 아파트 입구 현관으로 나가는 순간,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차가 나가는 동안 A는 계속 카메라에 찍힌다. 차가 아파트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에도 찍힌다. 소리 없이 찍힌다. A는 하루종일 번득이는 유리알 영상의 피사체로 얼굴을 보이거나 옆모습을 보이거나 등을 보이면서 기록을 남긴다.     


하루종일 자신의 모습이 기계한테 기억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조건에서 ‘나는 폐쇄회로 카메라나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빼달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안녕이라는 명목과 법률의 어깨 위에 설치된 거리의 카메라들이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부조화 상태에서 열외 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은 드라마 제목이 아니다. ‘코로나 19’는 이 공공연한 지켜보기를 넘어 수많은 불특정 다수와 개인의 사생활을 서로 나눠보는 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켜보는 메커니즘’이 사람의 복잡한 의식 체계 중 하나를 고스란히 바깥으로 베껴온 형국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몸 밖에 있는 카메라 촬영 세례를 받고 있다. 당신은 대책 없는 관찰 대상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몰래카메라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속수무책, 수동적 피사체 역할을 당신은 법률로써 기꺼이 수용했다. 당신은 자신을 몰래 찍을 수 있는 권한을 국가에게 위임했던 것이다.     

   

항의할 대상도 마땅치 않다. 항의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우리 집 앞, 폐쇄회로 카메라는 치워달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언젠가 그곳에서 일어났던 밤길 범죄자를 그 카메라 덕분에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됐다. 지속적인 공공 영상의 ‘행인 1’이 되고 만 셈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나의 즐거움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마음과 가슴이 환하게 열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당신이 능동적 관찰 주체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지금 즉시 가능하다. 당신 스스로 마음의 카메라를 상상해 보라. 그런 후 앵글 방향을 당신 자신에게 향하도록 한다. 이걸로 끝이다. 당신의 마음이라는 카메라는 당신의 몸을 주시하고 있다. 그 카메라는 당신의 몸을 앵글에 담아 찍을 수 있다. 마음의 무비 카메라 하나가 하루 종일 당신을 따라다닐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런 설정도 가능하다. 당신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촬영하는 중으로 디자인해도 좋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우리의 삶이 그런 꼴이다. 영화 속 한 주인공 같은 삶 아니겠는가. 


 1분만 눈 감고 내 몸의 이미지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당신은 마음의 카메라로 몸의 이미지라는 당신의 생각을 지켜볼 수 있다. 당신이 앉았다가 일어서는 순간 ‘일어섬’을 스스로 촬영하고, 젓가락을 잡으면 ‘잡음’을 스스로 촬영하고, 김치를 입안에 넣으면 ‘넣음’을 스스로 촬영하는 것. 마음의 기쁨이 있으면 ‘기쁨’ 한 장면 촤르르…      

이 연속적인 의식의 동영상 촬영이 다름 아닌 ‘명상’이다. 당신 몰래 숨어서 한두 시간 만에  400번도 넘게 당신의 삶을 주시하는 폐쇄회로 카메라 앵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주도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안은 스스로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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