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 I K樂Company 영양여중고 가다
오랜 지인이 계신 학교로 ‘찾아가는 공연’을 하게 되었다.
뻔한 예산이라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양해를 구했고, 다행히 모두 흔쾌히 응해주었다. 조명까지 욕심내는 건 언감생심이었고, 그저 음향만이라도 제대로 갖추어 학생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 나름대로의 준비와는 별개로 학교 측의 과분한 환대는 예상했었지만, 매사 진심을 다하는 선생님을 닮은 제자들 또한 그럴 것이란 건 정말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오후 2시 30분 공연에 맞추어 준비해 주신 아점이 ‘벌집 삼겹살’이었던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장면 하나.
“저기요.”
여학생 두 명이 말을 건다. 핵무기보다 무섭다는 중2는 지났겠지만, 고2 정도면 패트리어트 미사일급은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터였다.
“학교 체육관 조명 담당인데 셋 리스트가 있나요?”
이번 공연을 위해 곡 순서를 조정하긴 했지만, 조명을 위해 따로 큐시트까지 작성하진 않았던 상황. 조명 메모리 때문이라면 유튜브 영상이 참고가 될 거라 일러주며 곡별 URL을 보내주었다.
이내 학생은 학교에 보유한 핀 조명이 4개뿐이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보여준 영상은 경력 30년의 조명 디자이너가 이틀에 걸쳐 셋업하고 직접 오퍼레이팅 했다는 말 대신,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느낌만 살려달라”라고 부탁했다.
뭔가 알겠다며 돌아서는 뒷모습 너머로 선생님께서 귀띔해 주신다.
“쟤가 우리 학생회장이에요.”
그제야 체육관 천장에 달려 있는 바텐과 조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면 둘.
셋 리스트 중 두 곡은 참고할 라이브 영상이 없었다. ‘알아서 해 달라’는 내 말이 너무 성의 없어 보였나 보다.
한참이 지난 후, 그 곡들은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묻기 위해 학생이 다시 찾아왔다. 처음보단 덜 당황했지만, 이번엔 대답이 궁색해질 것 같아 급히 출연진 리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운전 중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그리고 이어진 조명 디렉팅 문의.
수화기 너머로 나보다 더 당황한 리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학생은 만족스러운 뒷모습을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장면 셋.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시큰둥한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두 팔을 벌려 체육관 마룻바닥을 ‘짝!’ 소리 나게 냅다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망했어요. 너무 많이 틀렸어요...”
“뭐가?”
“준비했던 타이밍을 너무 많이 놓쳤어요!!”
“괜찮아. 다른 애들은 모를 거야.”
나는 진심으로 빵 터지고 말았다. 너무 크게 웃으면 무안해할까 봐 급히 고개를 휙 돌려야만 했다.
돌이켜보니 “리허설은 언제 해요?”, “키보드 위치를 조금 옮길 수 있을까요?”라며 수시로 묻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 공연 직전 멘트를 하는 멤버에게 조명 큐 타이밍을 마지막까지 확인하던 그 열정에 비해,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세심함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나를 반성하며 정말 좋았다고, 수고했다고 거들었다. 멤버들 또한 이런 조명 연출까지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못했기에 분명 만족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생은 또다시 뭔가 발랄한 뒷모습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에필로그
며칠 후, 그래도 수고한 대가가 명확하면 좋을 것 같아 카카오톡으로 간단한 선물을 보냈다.
‘헉, 감사합니다. (웃음 이모티콘)’
이 간결한 대답 속에 이틀간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학생이 수줍게 다가와 전했던 말을 마지막 기록으로 남긴다.
“다음에도 이런 공연 또 해주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