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할 타자가 짐을 싼 이유

완동거사 MLB I 김혜성 선수의 마이너행

by 노완동

월드시리즈 멤버이자 메이저리그 2년 차로 연봉 375만 달러를 받는 김혜성 선수가 시범경기 타율 .407, OPS .967이라는 압도적인 성적표를 남겼다. 하지만 그의 개막전 행선지는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오클라호마시티(다저스 산하 트리플A)로 결정되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벤치에서 간헐적으로 대타나 대주자로 나서는 것보다 트리플A에서 많은 타석을 소화하며 타격폼을 조정하고 2루수·유격수·중견수로서 수비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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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인 성적 뒤에 숨겨진 코칭스태프의 판단 기준을 이해하려면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 인플레이 타구율) 개념을 살펴봐야 한다.


국내 팬들에게 '바빕'으로 통하는 이 지표는 홈런을 제외하고 필드 안으로 들어온 타구가 안타가 되는 비율을 말한다. 타자다 공을 정확히 맞혀 필드 안으로 보낸 뒤에는 그 타구가 안타가 될지 잡힐지는 타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인 운, 수비수의 능력과 위치, 잔디 상태 등이 크게 개입한다. BABIP은 바로 이 '운'의 요소를 배제하여 타율의 맹점을 보완하고 선수의 진짜 실력을 가늠하게 해 준다.


보통 메이저리그 BABIP의 평균은 .300 내외다. 하지만 김혜성의 이번 캠프 BABIP은 무려 .556에 달했다. 이는 필드 안으로 공을 보내기만 하면 절반 이상이 안타가 되었다는 뜻으로 상당한 '행운'이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 1할대 타율(.116)에 그친 경쟁자 알렉스 프리랜드의 BABIP은 .156이었다. 잘 맞은 타구든 빗맞은 타구든 10개 중 8개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지독한 불운을 겪은 셈이다.


결국 두 선수 모두 비정상적인 고점과 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표본이 쌓일수록 성적은 각자의 평균치로 회귀할 것이라는 추정은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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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의 질은 리그 수준의 차이를 감안해도 KBO 시절과 비교해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김혜성의 KBO 통산 삼진율(K%)은 16.3%였으나 이번 캠프에서는 26.7%로 치솟았다. 이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위에 눌리고 있다는 신호다. 반면 9.5%에 달했던 볼넷 비율(BB%)은 3.7%로 급감하며 선구안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KBO 통산 타율(.304)보다 훨씬 높은 .407를 기록한 것은 BABIP이 .358(KBO 통산)에서 .556으로 급상승한 행운이 깊숙이 작용했음을 말해준다.


로버츠 감독이 언급한 트리플A행의 또 다른 이유는 두 선수의 숙련도 차이다. 알렉스 프리랜드가 이미 마이너에서 500타석 이상을 소화하며 더 배울 것이 없는 졸업생이라면 김혜성은 KBO의 정점에 섰으나 MLB 시스템에서는 아직 적응이 필요한 전학생인 셈이다.


김혜성 선수에게 희망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프리랜드는 타율이 낮더라도 메이저의 압박감을 견디며 적응하는 것이 유일한 성장 경로인 반면 김혜성은 트리플A에서 매일 4타석씩 소화하며 공수에 걸친 완성도를 높여 완벽한 상태로 콜업하는 것이 팀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마이너 옵션의 경우 김혜성과 프리랜드 모두 2개씩 남아 있었으나 베테랑 산티아고 에스피날은 옵션이 없다. 유틸리티 자원으로서 김혜성이 수비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단은 타선의 뎁스를 위해서라도 에스피날을 로스터에 묶어두는 선택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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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김혜성은 반드시 우리를 도우러 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BABIP의 거품을 걷어내더라도 .407라는 타율은 그의 컨택 능력이 빅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결과다.


결론적으로 다저스는 '졸업생' 프리랜드와 '옵션 없는' 베테랑을 먼저 활용하고 '유망한 전학생' 김혜성을 가장 확실한 보험으로 트리플A에 배치하는 전술적 움직임을 가져갔다.


이번 결정은 결코 실력에 대한 낙제점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거듭나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