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코치가 되어간다.
그렇게 나의 조직 생활은 잠시 일단락되었고 나는 코칭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 코칭을 알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제껏 주변의 추천, 지인의 도움 없이 이것저것 혼자 땅굴을 파고 있었다. 그러나, 코칭은 달랐다.
내게는 정말 가깝게 지내던 아는 누나가 있었고, 우연히 그 누나를 통해 코칭을 받게 되었다. 이제껏 걸어온 길에 그 흔한 선구자가 없었으나 코칭만큼은 있었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 코칭은 시작되었다.
가벼운 질문부터, 밀도 있는 질문까지 오르락내리락 나의 감정선을 추적하셨다.
20분쯤 지났을까?
혼자서 울거나, 타인에게 눈물을 잘 보이지 않던 내가 한 가지 질문을 받고선 눈물을 쏟아냈다.
‘네가 만약 인사담당자라면 이렇게 너와 같이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주고 싶어?‘
대답할 수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스스로 위로를 건넨다 생각하니 숨이 가빠왔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살아내기 버거웠나 보다.
내리 5분을 울며 침묵했던 나는 가까스로 내게 위로와 안녕을 건넸다.
잿빛 인사와 함께 내 마음의 짐은 반쪽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느낀 코칭의 힘이었다.
누나는 나와 호흡하고 동행했다. 감정선을 추적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 대면이 부끄럽지 않았고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벼움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코칭이 이런 거예요?’
누나는 대답했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거봐 넌 할 수 있고 이미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야‘
코칭 이후 삶의 전선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쌓인 문제도 원활히 해결되었다.
내면의 점들이 연결되어 선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몇 년간 고객을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해왔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위로이자 해결책이었다.
마치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그간 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랄까.
나는 나름 내게 질문을 많이 던지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
질문이 질문을 낳았고, 곁에서 따스히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는 건 분명 큰 힘이었다.
나아가, 생각의 확장은 스스로 존재할 때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
이렇듯 코칭은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닌 게 분명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내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었다.
사람들은 바쁜 사회 속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나조차 이렇게 현실을 살아가기만도 벅찬데, 그걸 스스로가 인정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현실을 사느라 바빠서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던 기성세대, 생각이 너무 많고 나 스스로를 빼곡히 지키고 싶어 하는 알파 세대.
세대와 세대 간의 공간 안에 코치가 존재한다면 각자를 이해하며 삶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배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들과 호흡하며 동행하며 그들을 온전히 세워줄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고 싶었다.
코칭을 배우면 대화뿐 아니라 가정, 관계, 삶의 전반적 태도에 유익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코치로 발걸음을 돌렸다.
혹자가 보면 너무 감정적인 결정이 아닌지 묻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 속에 부딪히는 일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수년간 내 마음 안에는 세상에 감사함을 선포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빡빡한 사회 속 서로가 감사함을 나누고, 따스한 삶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다.
나의 브런치 글만 봐도 그렇다. 내가 느낀 사회 속에서의 울림 있는 서비스 경험, 타인과 섞이며 느끼는 안온함 등.
나는 어찌 보면 이것을 묵묵히 전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겠다.
그 자리에 코칭이 더해지니 진짜 나답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찬 감정이었다.
끌어당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치라 하면 스포츠를 떠올린다. 선수를 육성하고 도와주는 코치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직업은 조금 다르다.
육성을 넘어, 해답이 스스로 안에 있음을 믿도록 도와주며 생각을 일깨워주는 생각 파트너이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같이 풀기 위해 노력하지만, 절대 조언이나 컨설팅을 하지 않는다.
갈증과 갈망을 스스로 마주하고, 풀어보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끝까지 도운다.
함께 발맞춰 걷고, 말투의 높낮이가 변화되었을 때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감정을 묻는다.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당 시간에 몰입한다.
알아차림과 프레즌스를 온전히 느끼며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가 해답을 발견하고 자유함을 느끼는 자리 동석한다.
나의 코치명은 ‘나우디’ 다.
NOW:D
Natural Owan Warm : Detail
고객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도록 도우며
온전한 스스로를 마주하고
따뜻하게 경청하며
섬세하게 질문한다.
그리고 고객의 곁에 바로 지금(NOW) 함께한다. 더불어, 한 발짝 서서 섬세히(Detail) 고객을 바라보고 더 밝게 웃을 수 있도록 돕는다 : D
그렇기에 앞으로 나를 만나는 모든 분들을 이렇게 대할 것이다. 그들이 가진 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갈 것이다.
어떤 고민이던, 복잡한 생각이던 조금이나마 풀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코칭은 요술이 아니다.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정에 단초가 되어줄 것임은 분명하다.
그 힘이 주는 강력함은 몸소 경험했고,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던 전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코치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