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부지런히 사랑해 보셨나요.

'부지런한 사랑' 서평

by 나우디

#나의 생각을 움켜쥐었던 책

'부지런한 사랑 - 이슬아'


1. 나는 왜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나의 영감노트 팔로워들의 추천이었다. 이슬아 작가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의 문체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곧장 서점으로 갔다. 그곳엔 '부지런한 사랑'이 놓여 있었다. 평소와 같았으면 표지를 잠깐 훑어본 뒤 목차나 프롤로그로 간다. 하지만, 표지의 글은 잠시 나를 그곳에만 머물게 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 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보통의 어린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물으면
"대통령이요, 선생님이요, 축구선수요, 가수요" 등 직업을 앞세우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그 당시 '커서 선생님이 될래요!' 라며 당차게 외쳤던 기억이 있다.

작가는 온전한 나를 마주하고 직업이 무엇이 되었건 그 위엔 최대한의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던진다.

커서 내가 되고, 최대한의 내가 되는 일. 온전한 나를 마주하며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주는 일,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최대한의 나. 이 가르침이 작가가 아이들에게 나눠주려 했던 진짜 사랑 아니었을까. 성인인 나는 아직도 이것이 어렵다. 아이들을 꾸준히 사랑하며 느껴나갔던 작가의 소중한 감정들이 궁금해졌다. 그 아이들을 부지런히 사랑하는 작가의 팔에 얹히고 싶었던 것이다. 얹히다 보면 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지 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또한, 표지를 자세히 보면, 더 자란 순수한 나무가 덜 자란 나무를 꽉 안고 있다.
더 자란 나무는 작가를 상징하는 것 같이 보였고,

덜 자란 나무는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작가의 나무는 나무로써 온전히 있지 않고 주변에 버섯이 자리 잡고 있다. 순수한 나무로 자라나는 과정 속 인생에서 겪었던 고난과 고통 혹은 사회의 때가 붙어있는 것을 말하는가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나무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나무와 나뭇가지뿐이기 때문이다. (혹은 더 자란 나무(작가)가 덜 자란 나무(아이들)의 사랑을 먹고 주변에 버섯을 피운 것일 수도.. 사랑을 통해 그 마음이 나에서 타자로 이동한 것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책을 통해 새롭게 느끼거나 배웠던 것들


p24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100% 공감한 문장은 아니지만, 내가 꼭 소유하고 싶었던 문장이다.

살면서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본 경험은 없다. 장학금을 위해 학부 공부를 꾸준히 했던 것 이외에는.

그마저도 학교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가능했다. 나는 시스템이라는 울타리에 던져지면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엉덩이 무겁게 버틴다. 울타리가 벗어졌을 경우엔, 그저 부끄럽고 가벼운 내가 되고 말아 버린다. 자존감도 낮아진다. 꾸준하지 못하다. 이것저것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의문이라는 창이 날아와 꾸역꾸역 담아왔던 나의 가슴 안을 다 뒤집어 놓고 간다. 그래서 온전한 나의 상태에서 꾸준함이 주는 힘을 100% 알진 못한다. 울타리 밖에서도 꾸준함을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은 갈망이 있다. 누군가를 100% 이해한다는 일은 어렵고, 그만큼 이해라는 단어를 쓰기엔 신중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꾸준하게 무언가를 한다는 건 사전적 정의처럼 '한결같이' 정말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작가는 이러한 꾸준함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글쓰기에서 말이다. 솜털같이 가볍게 글이 써지는 날이 신나고, 그런 날이 자주 올 거라 단념하며 꾸준함을 잃는다면 나는 곧 뜬구름에만 기대 지치지 않을까. 나를 꾸준하게 사랑하면 남도 꾸준하게 사랑할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꾸준하다'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그리고 꼭 소유하고 싶다란 걸 느꼈던 배움이었다.


p78
'글방에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참 다양한 간식들을 먹으며 참 많은 글을 썼다.'
이렇게 쓰고서 최가영은 어쩐지 먼 곳을 보는 것 같았다.
글쓰기는 글쓴이를 멀리 가게 만들기도 한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나에게로든 남에게로든 말이다.

매 순간 현재에만 머무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순간이 좋아서.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나지막한 바람에서 난 악착같이 붙잡는다. 더 이상 꽁꽁 얼어붙은 손이 되기 싫어 핫팩을 꼬-옥 움켜쥐듯 말이다.

하지만, 가끔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싶을 그런 날이 있다. 과거의 내게 안부를 묻고, 미래의 내게 인사를 건네고 싶을 그런 날.

글쓰기는 마음의 여백을 이어준다. 안부와 인사 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는 그런 날이 있다.


나는 진정한 글의 힘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로이 이동하며 고스란히 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나를 이동시키다 보면 그 속에서 타인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에게만 머물던 사랑 어린 시선이 타인을 보게 되는 것이다. 글쓰기는 사랑을 나눠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사랑을 받고 타인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글쓰기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글쓰기를 통해 느끼는 본질, 그리고 사랑의 이동을 일깨워준 배움이었다.


내게 없는 것 말고 내게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경험 말이다.
어떤 사랑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끈다.
(중략)
내가 나여서 그 자체로 너무 충분하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타인의 사랑에 굳이 응답하지 않아도 평안할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없는 것과 나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면서 시작되기도 하니까.
P168-169

유복하게 자라왔던 A가 있다. 형편이 어려워 바쁘게 살아가고,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버텨가는 B가 있다. A는 그런 B를 남몰래 동경한다. 그러던 중 B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겹쳐 대타가 필요하게 되고, A는 자신이 자청하여 도와주기로 한다. A는 자신의 있음이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B를 더욱 애정하고 도와준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티를 입고 말이다. 그 티는 아르바이트 후 음식물 범벅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A는 행복하다. 있음의 부끄러움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기에. 나의 노력이 친구에게 가닿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기에.


내가 가장 아끼는 대목이다.

내게 참 많은 생각의 씨앗을 심겨주었다.

여자 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악착같이 살아왔다.

14살 때 어머님 식당으로부터, 콜센터, PC방, 터미널, 영화관 등 손가락으론 셀 수도 없다. 내가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나도 사실 남몰래 그런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나를 몰랐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의 있음이 부끄러워졌다. 작가의 말처럼 있는 것이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자 온전히 그녀를 받아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그녀의 빈 곳을 품어주길 원했나 보다.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 안의 결여를 인지했다. 그녀의 삶을 그려보기 시작했고,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했던 말들에는 깊이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볍게 여겼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정이라면, 그저 내뱉은 말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고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돌이킬 순 없다. 하지만 바꿔나갈 순 있다.


나의 사랑은 이런 부분만 놓고 보면 일방향적이었나 보다. 부지런히 사랑하고 싶어졌다. 내 안의 결여를 통해 그녀를 사랑하고 내가 가진 역량들로 그녀를 채워주고 싶었다.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그녀의 진급시험을 도왔다. 마치 내 것처럼. 나의 모든 일을 뒤로한 채 그녀를 도왔다. 타인을 도와주고 타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온전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부점장이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행복했다. 사랑이었다.


3. 내 삶으로의 적용


궁극적으로 작가는 독자들을 여기까지 이끌어 내려했던 것 아닐까.

나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통해 누군가를 돌아보고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씨앗을 심길 원했던 건 아닐까. 씨앗은 내가 심는 거지만, 자라나게 하는 이는 따로 있듯이 말이다.


부지런한 사랑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에는 돌아봄 혹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겠지.


글을 쓰며 사랑의 다양한 정의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돌아보기도 했다.

작가가 아이들을 통해 사람과 글쓰기를 부지런히 사랑했듯 나와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기르고자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 사랑을 글로 담아내 보려 한다. 나의 이야기도 좋지만, 그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수했던 감정들 말이다. 추후에 그녀의 뒷모습에 관해 쓴 글을 한번 올려볼까 한다.


글쓰기를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을 사랑하기로 했다. 앞으론 그 사랑을 어떤 이가 받을 차례다.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