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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엽 대만은 지금 Mar 11. 2021

내가 처음 만난 ADHD가 있는 아이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약 십수 년 전에 잠깐이나마 짧지만 길게 만났던 아이들이다. 지금은 의젓한 성인이 되었겠거니 한다. 이러한 나는 이 친구들 덕분에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고 이들은 나에게 호기심과 동기 유발, 그리고 칭찬이라는 보상에 대해 깨닫게 해 줬다.


이 아이들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었다. 내가 이들과 만나기 전부터 이러한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누구는 이들에게 정신병 환자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다. 이들은 맑고 순한 어린 친구들이었지만 이러한 장애로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왕따 아닌 왕따가 되어 두 번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당당함보다는 그간 겪어온 삿대질과 조롱에 지쳐 축 처진 모습이었다. 이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았음에도 두 손을 움켜 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내 슬하에 잠시나마 있던 이들을 알기 전까지 나는 ADHD이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주의력이 남들보다 조금 떨어질 뿐이라고 여겼다. 전공으로 인해 음악치료에 관심은 있었지만 ADHD관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이 장애를 판정받은 동생 같은 어린 친구들이 내 앞에 등장했다. 별 거 아니겠거니라 여겼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이들에게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마음을 고쳐 먹고 미친 듯이 이 장애에 대해 학술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는 족족 닥치는 대로 인쇄를 했고, 틈나는 대로 이를 읽어 나갔다.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곁에 돌연 등장한 어린 친구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다름’이었다. 소위 정상이라고 분류된 친구들보다 조금 더 달랐다. 다름의 정도는 ADHD의 경중 정도로 나뉘었고, 어떤 이들은 ADHD 장애를 신경발달장애가 아닌 행동발달장애로 여기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정신병이라고 치부했다. 마냥 가슴이 아팠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든 나이였다. 그리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다. 어쩌면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 장애를 안고 살아가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제 풀에 지쳐 스스로 폭발할 때가 있었는데 이때만큼은 공격적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이때만큼은 분노조절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어린 친구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적인 행동의 특징이 있다.집중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항 때만큼은 집중력이 강했다. 하지만 허공을 바라본다거나 남이 이야기를 할 때 귀담아듣지 않는 편이다. 산만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 보니 뭔가를 시켰을 때 이를 제대로  끝내는 횟수가 다른 아이들보다 적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시킴을 당했을 때는 또 달랐다. 평소에 산만하며 물건도 잘 잊어버리거나 잘 잃어버렸다. 또한 상대의 기분이나 자신이 속한 분위기 파악도 잘 못했다. 눈치가 느리거나 아예 없어 보였다.


이들은 말이 정말 많았다. 상대방이 경청해 주길 바랐고, 그 말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이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는 경우는 호기심이 발동한 뒤였다. 이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호기심에 의한 학습 효과는 다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호기심 유발은 곧 이들에게는 동기 유발이다. 나는 여기에 몰입했다. 지극히 상식선에서 불리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호기심을 유발하기기 쉽지 않았다. 보통의 아이들이야 하라고 하면 의사에 관계없이 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하라고 했을 때 시작을 한 뒤 얼마 못가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때만큼은 이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못 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화를 낸다면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동기 유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분노의 감정이 섞인 말투로 “왜 다 안 했어?”, “넌 항상 왜 그 모양이니”, “다른 애들은 다 했는데”라는 식의 말과 함께 큰 소리로 잔소리를 할 수도 있다. 이런 말은 서로 에너지만 소모할 뿐만 아니라 시간 낭비다. 설사 이들이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정작 귀담아듣지 않기 때문이다. 귀담아 들었다 해도 이내 잊어버린다. 이에 분노 조절에 실패한 교사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면박을 주게 된다. 이는 또다시 이들에게 장애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과 같다.


이들의 동기인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이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주의력 결핍이 아니라 주의력 과다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하나에 몰입하는 시간이 비교적 찗은 것이엏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집중했을 때 그 시간 동안의 문제 해결 능력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뛰어났다. 문제 해결 과정도 창의적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몰입의 시간은 이들의 관심도와 비례하며 몰입도는 상당했다. 눈에서 레이저가 금방이라도 발사될 것만 같았다.


교사는 이들의 몰입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진심 어린 칭찬을 해 줘야 한다. 그리고 관심 어린 질문도 던져 줘야 한다. “어떻게 생각해냈어?”라는 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한다. 이들이 허물없이 다가와 “쌤? 식사했어요? 뭐 먹었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 같다. 이들이 선생님과 있던 일을 집에 가서 부모에게 즐겁게 이야기한다면 정말 성공한 것이다. 이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교사가 있다면 적어도 그 교사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교사는 이들이 행동하는 데에 있어 근원이자 원동력이 된다.


하늘이 도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러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야단을 쳐야 할 때는 제대로 쳤다. 흑과 백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는 이들 부모의 귀에 들어 갔고 이들은 조용히 나를 찾았다. 어떤 어머니는 학교 가기 싫어했던 아이가 학교 이야기만 한다고 했고, 또 어떤 아버지는 집에 오면 게임만 하는 아이가 게임은 안 하고 학교에서 있았던 이아기를 하다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다고 했다. 또 이들은 비결을 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명의 학부모가 교장실로 전화를 해 내 이름을 거론했고 회의에서 교장과 일부로부터 나는 지랄 맞게 나대는 오지랖 넓은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축 처진 어깨를 질질 끌고 복도를 걷는데 ADHD 장애가 있는 남학생 하나가 활짝 웃으며 쪼르르 달려왔다.


“쌤! 저희 엄마가 오늘 교장실로 전화한댔어요.”

“왜? 무슨 일 있으시다니?

“엄마가 쌤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교장쌤한테 이 말을 하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교장쌤이 쌤한테 칭찬해주고 돈도 더 주고. 쌤 저 잘했죠?”


‘이! 범인이 바로 너였구나!’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향해 생글생글 웃고 있는 녀석을 보니 쓴웃음을 지으며 처음으로 빈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고맙다. 집에 가면 부모남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 드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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