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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엽 대만은 지금 Oct 08. 2021

원인 모를 스트레스 덕에 떠오른 말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신체가 깃든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은 내가 어릴 때 귀에 목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이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건강만 지키면 마음은 그냥 따라오는 것이라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 노화가 찾아왔는지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정신은 마음에 영향을 받고 그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스트레스에  좌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신체가 형성된다”고 되뇄다. 깨달음이 다 진리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깨달음을 뒤로한 채 20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니까 정말 노화가 찾아왔다. 신체의 변화가 많았다. 머리도 많이 빠지고 흰머리도 좀 자라다 못해 코털 일부도 하얘졌다. 그리고 사는 곳도 한국에서 대만으로 변했고, 내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김치는 아껴뒀다가 먹고 싶을 때 먹는 특별한 음식이 됐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동안 잊고 있던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논리는 노화로 깨달은 내 신체적 변화로 인해 다시 소환됐다. 코로나19 청정구역이라고 자부하던 대만에 지난 5월 코로나19 시대가 찾아왔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 있으면 일정 기간이 지났어도 가지 않는 것이 정석이 되기도 했다. 5월에 하루 500명에 달하던 대만 지역감염사례는 10월 5일 기준으로 연속 6일째 0명이다.


나도 경제적 타격을 심하게 입었고,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려고 보니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덕분에 나갈 일은 마트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마트에서 훅 나가는 돈에 허리가 휘청하는 느낌을 받았다. 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만성질환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비롯된 건강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스트레스가 몸의 면역체계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면역체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교란된 면역체계는 다시 스트레스, 우울, 불안 등을 유발한다.


숨만 쉬어도 답답함이 느껴지고 묵은 체증이 내 가슴을 누르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식욕이 없거나 소화불량 증세는 없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지기도 했고, 심지어 자는데도 심박 수 증가로 잠을 깬 적도 여러 번 있다. 이로 인해 수면 시간은 바짝 줄어들었고 어지럼증과 두통은 매일 내 머리로 출퇴근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무기력해졌다.


결국 중의원(한의원 격)에 다니기 시작했고, 나이가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약간 많아 보이는 중의사한테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보약 지어먹는 것보다 정기적으로 상태를 봐 가며 체질 개선을 하자는 취지였다. 의사는 맥도 짚고 혓바닥도 살펴보고 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 스트레스받는 일 있나요? 스트레스 말고는 원인이 없는 거 같은데요.”

“글쎄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은데, 마냥 답답하네요.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겠네요. ”


의사는 몇 초간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는 처방할 약재들 이름을 컴퓨터에 써 내려갔다. 뭐가 원인이었을까. 코로나19 핑계는 식상한데 말이다. 그렇게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병이 찾아왔다. 원인이라도 알면 속이라도 후련하겠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으니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질 지경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1명꼴로 평생 한 번 정신질환을 겪으며 한 해 400만 명 이상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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