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구조조정을 맞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근무일이었다.
아, 여느 때와 다른 건 하나 있었다. 인사이동 결과를 듣기 위해 드물게 사무실에 출근을 허락받은 날. 아마도 2020년 마지막 사무실 방문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은 (아주 소수만이 사무실에 있었지만)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데, 그만큼의 사랑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능력 있고, 유쾌하며 멋진 동료들이다.
동료들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며 먼저 배치 결과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업데이트를 들었다. 구조조정이라고 해봐야 정말 구조만 바뀌고, 대부분 인원은 본인이 하던 일을 그대로, 또는 비슷한 일을 하는 상황. 자연스레 나도 그중 하나려니 하고 마음 편히 커피를 들이켰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어느덧 11시 30분이 되어 팀장님이 계신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웠고, 팀장님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셨고, 테이블 위에는 한껏 구겨진 휴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 팀의 선임들이 모두 나보다 앞서 면담을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팀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제인님*, 잠시만요. 곧 상무님이 들어오실 거예요.”
(*깨알 소개: 우리 회사에서는 영어 이름을 쓴다.)
매니저와 1:1로 해야 하는 면담에 왜 상무님께서 들어오시는지 미처 물어볼 새도 없이 상무님께서 원격으로 로그인하셨다. 상투적인 안부 인사를 나눈 다음에 바로 꺼내신 본론.
“제인, 혹시 얼마 전 타운홀에서 있었던 포지션 임팩트 관련 표 기억나? 그중에서 제인은 E Type에 속하게 됐어. 즉, 현재 있는 팀에서는 제인님 직급의 자리가 사라졌다는 거지."
직급이 사라진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지? 내가 헷갈린다는 표정을 짓자 친절히 추가 설명을 하셨다.
"다시 말해 제인님은 지금 jobless가 되었다는 거야. 대신에 곧 회사에 여러 포지션들이 열릴 거야. 거기서 본인 커리어에 맞는 곳으로 지원해서 합격하면 돼.”
“자리가 사라졌다”, “jobless다”라는 것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져서 뒤의 이야기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간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인사 고과도, 평판도 지난 몇 년간 좋았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회사에 “내 자리가 없다”라니…
말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본 상무님이 말을 이어가셨다.
“이건 성과 연동이 아니야. 회사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일 뿐, 우리 회사에서 제인님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라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제인은 이번을 기회 삼아 승진을 노려 보자. 제인에게는 그런 자리가 많을 거야.”
회사에서 우는 걸 너무 싫어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실업이라니.
면담을 끝내고 나오니 더 이상 사무실에 있기 싫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 다시 면접을 봐서 자리를 따내라니. 성과가 낮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운이 나빴기 때문에 이 상황에 처해졌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업무를 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 잘 됐다 싶어 저녁 7시까지 내리 일어나지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며 일을 했다.
그렇게 그 날의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퇴근하던 길, 와인 하프 보틀을 사들고 집에 왔다. 식탁도 아닌 방 한 구석 쪼그려 앉아 약간의 안주와 함께 와인 반 병을 1시간도 안돼서 다 마셔버렸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참 뒤숭숭한 꿈이었길 바라며 일찍 잠들었다.
서른 살이 저물어가는 겨울, 난 그렇게 구조조정을 맞이했다. 느닷없이 시작된 회사와의 거리 두기였고, 생존해야만 했다.
이번엔 구조조정 생존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Image source (이미지 출처)
P1: https://bit.ly/3rIt3t6 (cropped/비율에 맞춰 자름)
*영문 사이트에서 가져온 이미지이기에 영문 안내를 함께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