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수입'이 실언이 아닌 이유

언어가 규정하는 것들에 대하여

by 이제희

"말 하나에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반응은 낯설지 않다.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꾸자고 했을 때도, 출산율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말이 돌아왔다. 단어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냉소.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는 걸. 무엇을 정상으로 보고, 누구를 중심에 두고, 어떤 역할을 당연하게 여길 것인지—그 모든 걸 언어가 정해왔다는 걸.


유모차 대신 유아차를 쓰자는 제안이 과민함이었을까? 아니다. 아이를 중심에 둔 표현 속에서 양육의 책임이 자연스럽게 여성에게로 귀속되는 구조를 건드린 것이었다. 출산율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는 개인의 삶은 지워지고, 국가 정책의 숫자로만 남는다. 단어는 가볍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역할과 기대, 위계가 겹겹이 쌓여 있다.


스크린샷 2026-02-11 오후 4.06.17.png 김희수 진도군수. 출처 : KTV

그래서 김희수 전 진도군수의 '처녀 수입' 발언도 단순한 실언으로 넘길 수 없다.

'처녀'라는 말은 여성을 노동 주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본다. '수입'이라는 말은 사람을 정책 자원으로 환원한다. 두 단어가 만나는 순간,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는 동시에 객체가 된다. 성별과 국적이 겹쳐진 자리에서 사람은 '데려올 수 있는 것'따위로 축소된다.


실언이란 원래 생각과 말이 어긋날 때 나오는 말이다. 순간의 경솔함으로 평소와 다른 말이 튀어나오는 것. 그런데 이번 발언은 오히려 생각과 말이 정확히 일치한 경우에 가깝다. 평소에 작동하던 인식이 검열 없이 그대로 드러난 것. 그래서 더 문제다. 이건 세계관이었다. 그가 망언 논란과 뇌물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유느님 정도는 돼야 실언이 되지 않을까.. 그의 살아온 궤적을 보면 세계관을 드러냈다고밖에...)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는 동시에 어떤 현실이 정상인지를 규정한다. 사람을 자원으로 부르고, 여성을 조건으로 분류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때, 그 인식은 제도와 정책 속으로 스며든다.

이번 논란은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다. 이 발언이 실언으로 포장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세계관을 정확히 보여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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