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감정 무이한 순간 #4

끝이 있음은 알지만 언제인지는 모를 때

by 나우히어

국민배우 안성기 님이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1월 1일 생일을 맞았다는 기사, 그리고 며칠 뒤 쓰러진 지 6일 만에 고인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고인도 그리고 가족들도 참으로 복되다였다.


https://m.blog.naver.com/minsimnews/224130520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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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혈액암 발병 후 최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암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모르기에 그 과정을 거친 후의 죽음을 두고 감히 복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11년 전 쓰러진 이후 그리고 1년 전 또 쓰러진 이후, 작년 여름부터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둔 나로서는 큰 위기 이후 6일 만에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느껴진다.


올 초 부산대학교 응급실 입원과 퇴원을 3~4 차례 반복했을 즈음 병원에서 이제는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고 했고 그 당시 요양병원의 의사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고 그 사이 해가 바뀌었고, 아빠도 故안성기 님과 생일이 같아 올해 생일을 병원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가보지는 못하고 딸기와 두유와 비비고 육개장을 보냈는데 그 마저도 많이 드시지 못했다고 했다.


그즈음부터 아빠의 증상 중에 새로운 증상이 추가되었는데, 오른쪽 팔이 아프다는 것과 엄마나 고모가 병문안을 간 낮 시간에 그렇게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련하여 의사의 소견은 폐나 간 쪽에 암이 의심되고 이전보다 더욱 죽음에 가까워져서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잠이 드시는 것 같다였다.

지금 아빠의 몸 상태로는 암인지 여부를 판명하기 위한 검사를 받는 것도 설사 검사를 받아서 암이라고 한들 항암치료를 할 수도 수술을 할 수도 없지 않을까 라는 게 우선 현재 요양병원 의사의 그리고 엄마와 나의 의견이기는 하다.


길게 잡으면 지난 11년 동안, 짧게 잡아도 작년 1년 동안 아빠가 언제 돌아가셔도 충격받지는 않을 것 같기는 했지만, 막상 암일 수도 있다는 말은 또 다르게 다가오기는 했다.

우선 암이면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가 제일 먼저 걱정되었다. 원래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세세하게 가족들에게 말하는 성향이 아니다 보니 그동안에도 어디가 아파? 증상이 어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만신이 아프다.” 정도였다. 그러니 또 앞으로 있을 고통을 우리는 알 수도 없고 조금이나마 짐작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부분이 참 안타깝고 안쓰럽다. 말을 한다고 고통이 덜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좀 같이 나누고 어디가 어떻다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것마저도 어려운 건가 보다.


한 동안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닐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앉을자리가 없을 때 보통 출입문 근처에 서 있는 편이지만, 가끔 자리가 나면 바로 앉고 싶은 마음에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 서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안 내리는데 내 옆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내려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쏙 앉게 되면 아, 내가 저 사람 앞에 설걸 싶다. 그때 속으로,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 머리 위에 어느 역에 내리는지 쓰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언제 내리는지 알면 그래서 내가 서있는 것이 언제 끝날지 알면 서 있는 시간이 좀 덜 힘들 것 같다는 생각.

하물며 지하철에서 몇십 분 서서 가는 것도 힘들어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나포함 한 사람의 인생의 끝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아빠의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면 엄마와 내가 지금보다는 덜 불안하고 덜 미안하고 덜 마음 아플까.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0000년 00월 00일 00시에 죽는다는 것을 알면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어떤 모습일지. 흔히들 생각하기로는 그러면 그냥 죽을 때까지 막살지 않을까 싶은데, 글쎄 요즘 같아서는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나 혼자만 알고 남은 시간 준비를 할 것 같다. 정말 어느 정도 준비가 다 되었을 때 그리고 임박했을 때 가족들에게 알리게 될 것 같다. 마지막 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과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다음 날 딱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연인과 헤어진 후 매달려 본 적이 없는데, 예전부터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추구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갈 때도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텐데 어쨌든 나는 그때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부디 나의 아빠의 마지막도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너무 고통스럽거나 너무 지치지는 않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