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감정 무이한 순간 #5

영정사진을 준비하기

by 나우히어



설날 연휴에 아빠를 보고 왔다. 연휴 직전 또 한 차례 위기가 왔었기에, 원래 딸과 둘만 내려가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하여 남편도 함께 갈지 고민하다가 원래대로 딸과 둘이 다녀왔다. 이번에 보고 오니 남편도 함께 다녀올 걸 그랬나 싶다. 딸과 손녀를 그래도 알아보고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왠지 이번이 마지막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와서이다.


우리가 다녀간 뒤 아빠의 상태는 나날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만 한다.


간경화라는 질병이 간암과는 또 달라서 정말 말 그대로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환자 자신과 그 가족들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이번에 담당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 와중에도 내 위주로 해석을 하자면 그래도 딸과 손녀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이제는 정말 최후의 수순으로 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모진 말을 하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나는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본 제일 안 좋은 모습이래 봐야 열이 올라 본인이 너무 힘들 때 자꾸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으라고 하면서 짜증을 내는 모습. 그 모습도 두세 번이 다다.


그만큼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내가 자주 가보지 못해서일 테고, 또 아빠는 아빠대로 나 혼자 또는 딸을 데리고 갔을 때 어떻게든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써서일 테다.


십 대 후반에 만나 50년 이상을 동반자로 살며 그의 옆을 죽을힘을 다해 지키고 있는 엄마, 그다음으로는 바로 밑 피붙이로 태어나 부모와 다른 형제들의 죽음을 모두 함께 겪고 있는 고모가 아빠의 이중적인 모습을 제일 많이 보았을 것이다.


12 년 전, 아빠가 응급실에서 피를 토할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우리들이지만, 또 막상 그의 마지막이 이제는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번에 부산에 다녀온 후로 나는 영정사진을 준비하게 되었다. 사실 굳이 사진관을 방문해 상담을 나눌 정도로 마음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오늘 카톡과 전화 통화로 예약을 완료하였다.


통화 마지막 즈음에 “급하신 건 아니죠?” 하는데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 망설임을 캐치했는지, 계좌번호 관련 카톡 안내 문구에 “혹시라도 급하게 사진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는데, 그 문구조차도 마주하기가 참 어려웠다.


나도 엄마도 평소에 대체적으로 F보다는 T 성향이 강한 편인데, 그런 엄마는 작년 8월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나와 통화하거나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마다 수시로 울먹거리곤 했다. 사실 엄마가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라도 울음을 참곤 했다. 엄마가 울먹거릴 때 나까지 울면 그냥 둘이 붙잡고 엉엉 울게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일부러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참고 그냥 어쩌다 문득 주로 나 혼자 있을 때 뜬금없이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눈물이 뚝뚝 흐르곤 했었다.


지난 주말에도 딸이 다음 주 개학을 맞아 명절에 받은 세뱃돈으로 쇼핑을 한다고 하여 차를 타고 홍대로 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하였다. 이제는 정말 의료적으로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면서 환자의 고통을 억지로 끌기보다는 끝을 마주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홍대로 가는 차 안에서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 즐겁게 쇼핑가는 길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나 혼자 삭혀버렸다.


사실 나와 아빠는 그다지 살가운 사이도 아니고, 나는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덤덤한 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의 아빠인 사람을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 그동안의 모든 감정들은 다 사라지고 공포와 슬픔의 감정만이 남게 된다.


엄마 앞에서 남편 앞에서 딸 앞에서 이런 내 감정을 억지로 감출 필요는 없지만, 벌써부터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마음도 있나 보다. 그리고 어차피 슬픔도 고통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말뿐임을 나는 알기에 그냥 아직까지는 혼자 감당하려고 하는 중이다. 더 강한 슬픔과 더 심한 고통이 오면 그때는 좀 가져가달라고 나누어보자고 해봐야겠지.


빠르면 수요일 중으로 영정사진 액자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사진을 찾으러 가는 길이나 찾아 돌아오는 길이 왠지 너무 슬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