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감정 무이한 순간 #6

그때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면

by 나우히어


시작과 끝을 제외하고는 모든 순서가 뒤죽박죽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다. 누구도, 인생의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다. -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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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이 다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 나와 남편과 딸, 그리고 엄마와 아빠. 돌아보니 그때가 참 행복했던 그러나 한편으로 불행했던 시절이다.


남양주의 아파트 1층에서 함께 살며 나와 남편은 아침마다 올림픽대로를 달려 삼성동으로 출근을 했었고, 엄마는 3살 배기 손녀 케어와 집안일을 담당했고, 아빠는 주택관리사로 일을 했었다.

촉망받던 청소년기를 거쳐 당시에는 연고대 부럽지 않았던 부산대를 졸업했던 아빠가 어떠한 삶의 경로를 거쳐 50대 후반의 나이에 주택관리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 구구절절한 사연을 오늘 다 적을 생각은 없다.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은 잘못이 없다. 다만, 아빠는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에 만족을 못했던 것뿐. 아니 직업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늘은, 그 시절 우리 방 옷장 깊숙한 곳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했던 그날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가 며칠 전에 엄마에게 처음으로 말했고 이제는 활자화해보려 한다.


당시만 해도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던 남편의 양복들만 넣어놨던 옷장을 정리하던 중 오른쪽 구석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그 속에 들어있던 건 반쯤 아니면 2/3 정도 마시고 남은 뚜껑이 닫혀 있는 소주병. 그걸 거기 넣어둘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그걸 발견한 순간 처음 든 생각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였고, 바로 다음 든 생각은 ‘남편이 이걸 봤을까’였다. 그걸 내가 치웠는지 그냥 뒀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정황상 나는 아마도 그걸 보고 그냥 그대로 둔 것 같다. 스스로 인정하기 힘들지만, 나는 아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그날, 아니 실은 이미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실 모른 척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의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때>의 인간처럼 무능한 인간은 없다. -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그로부터 약 12년이 흘러 아빠는 지난주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의 사인은 패혈성 쇼크사. 하지만 오랜 기간 음주로 인해 간과 신장이 다 망가져 마지막 1년은 응급실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버티다가 결국 떠나셨다. 작년 여름 요양병원에 입원 후 8~9개월은 그야말로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삶을 살다 가셨다.


어떤 삶도 결국에 죽음에 이르는 거잖아.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일까?라고 말이야...-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그래, 누구나 죽는다. 알고 있지만, 아마도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지금은 저런 말들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꾸만 그때 내가 내 삶이 바쁘다고 모른척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를 하게 된다. 그래도 지난 12년 동안보다는 조금은 더 건강하고 조금은 더 편안한 삶을 조금은 더 길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나간 것을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랬는지 아빠가 엄마도 나도 고모도 없는 상태에서 돌아가신 날도, 차가운 냉동고에서 나와 수의를 입고 입관을 하는 그다음 날도, 관 채로 화장장에서 불타 한 줌 재로 유골함에 들어가는 마지막 날도 나는 계속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대체로 의연하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챙겼다. 아무래도 내가 유일한 자식이다 보니 이런저런 챙겨야 하는 서류들도 많았고, 무빈소로 치렀지만 그래도 입관할 때 발인할 때 와주신 친척분들도 챙겨야 했고, 그 사이사이 최소한의 업무도 해야 했고, 생각보다 무겁고 뜨거웠던 유골함을 KTX에 실어 부산에서 서울역까지 그리고 우리 집을 거쳐 납골당까지 무사히 모셔야 했다.


그런 일들을 지난주에 다 하고, 이번 주 월요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수업도 하고 헤드헌팅 업무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왜인지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이다. 아침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아침에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게 갑자기 너무 귀찮아서 학교 가야 할 딸과 출근해야 할 남편만 깨워놓고 다시 누워있곤 한다.


사실 아침 운동을 할 때 종종 “그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게 좋은 거다.” 했던 아빠의 말을 생각했었다.

망가져가는 아빠를 티 안 나게 모른 척해놓고, 나는 아빠처럼 되지 않으려고 내 건강을 챙기는 것이 스스로 꼴 보기 싫은 건지. 내가 검은 비닐봉지 속에 든 먹다 남은 소주를 아빠에게 들이대며 아빠의 알콜의존증을 수면 위로 꺼냈더라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싶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언제 갑자기 돌아가실지 몰라 항상 불안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도 왜 내 감정은 아직도 널뛰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쉬지 않고 마셔온 술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를 보며 나도 작년 연말부터는 술을 멀리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오랜만에 술 한잔 하며 내 속에 들어 있는 감정을 좀 털어내야 할 것만 같다.

술 때문에 결국 돌아가신 아빠를 그렇게 봐왔고 사실 원망도 했으면서 결국 나도 기댈 것은 술뿐인가 싶지만, 달리 다른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