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지 말고, 하는 김에 더 해본다면
우리는 종종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착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글을 쓰고 있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고, 나름대로 나를 돌아보고 있다고 믿었다.
그 정도면 괜찮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과연 무엇을 더 얹고 있을까.
지난주, 독서모임에서 한 분을 만났다.
운동을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저 취미로 즐기시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최근에 생활체육지도자 보디빌딩 자격증을 취득하셨다는 것이다. 전공도 아니고, 본업도 전혀 다른 분야인데 왜 그런 선택을 하셨냐고 묻자, 그분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이왕 운동하는 거, 그냥 하는 것보다 하나 더 해보고 싶어서요.”
그 말이 참으로 오래 뇌리에 남았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단순한 취미로 남기고, 누군가는 거기에 목적을 하나 더 얹는다.
나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나는 글을 쓰면서 단지 쓰는 것에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마인드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시도는 충분했을까.
관심은 있었지만, 그 관심을 행동으로 확장시키는 데에는 망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태도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이왕 하는 김에.’
그 한마디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취미에 의미를 더하고, 관심에 실천을 더하고, 일상에 도전을 더하는 일.
그 작은 덧붙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에,
나는 무엇을 하나 더 얹어볼 수 있을까.
결국 삶의 크기는 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의 일을 어디까지 몰입하며 그 안이서 더 ㅊ선을 다 해보느냐에서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누군가가 역할을 정해주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가 나에게 부여하는 역할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선택의 크기가 곧 우리의 삶의 크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