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추억은 기록으로 기억된다는 걸 아는가

내가 그토록 사진에 집착할 수밖에 없던 이유

by 여지행

기록이 추억을 만든다는 말의 의미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5~6살 이전의 기억 중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몇 개나 될까?

아무리 애써도, 뭉개진 구름처럼 흐릿한 이미지 몇 개만 스친다. 그때 생각했다.
“혹시 우리 아이도, 지금의 이 찬란한 순간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이 마음을 서늘하게 스쳤다.
매일같이 웃고, 손을 잡고, 세상을 함께 배우는 이 시간이 훗날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면, 그건 너무 아쉬울 거 같다.

‘기록’으로 남는 유년의 조각들
어느 날, 한 문장을 읽고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의 유년의 기억으로 남지 않고, 기록으로 남는다.”

알고 보니 어린아이의 기억은 재편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7세 이전의 기억은 아주 단편적인 조각들로만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사랑받았던 감정과 그때의 온기만큼은 기록을 통해 이어주자고.
사진과 글, 작은 기록들이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전달해 주리라 믿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도 그럴지 모른다. 많은 수많은 시간 중에서 내가 ‘기억’이라고 믿는 장면들 대부분도 사실은 사진과 부모의 이야기로 덧칠된 ‘기록의 기억’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덜 소중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기둥 같았다. 사랑받았다는 감정의 증거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사진을 집요할 정도로 남겼다.
때로는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기보다 기록에 더 몰두한 적도 있었다. 그 사진들을 정리하며 다시 미소 짓는 지금의 내가 그 답이다.


순간에 머물 것인가,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늘 두 가지 마음이 부딪혔다.
하나는 “그저 그 순간에 집중하자.”
다른 하나는 “이 소중한 시간을 꼭 기록해야 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사진작가 숀이 했던 말이 오래 남았다. 수년간 찾아오던 바로 그 표범과 마주한 찰나, 그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월터가 이유를 묻자 숀은 말했다.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그저 그 안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거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도 같은 질문을 한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추억을 남기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셔터를 누르든, 그저 바라만 보든, 결국 그 모든 행동에는 ‘이 시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에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건 네가 처음으로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던 순간이야.”“이날은 네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던 날이야.”

그렇게 반복되는 기록 속에서 나는 바란다.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이 시간이 오래도록 숨 쉬기를.

그리고 깨닫는다.
이 기록은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록하는 순간, 나 역시 그때의 온기를 다시 품는다.

결국 이 모든 기록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걱정은 마음의 그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