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끝난 뒤에 남는 마음에 대하여

우리는 기대가 지난간 후 허전한 것인가? 여운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by 여지행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허전하다.

몸은 분명히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마음은 방금 전 장소에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 웃음이 오가던 자리,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이 천천히 뒤로 밀려난다.


최근 3개월 만에 독서모임을 오프라인으로 다시 만났다.

요즘처럼 각자의 삶이 바쁘고 분산된 시간 속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준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는 감각. 누군가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그건 일상에서 자주 얻기 힘든 종류의 힘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

즐거움과 함께 피로가 따라오고, 친밀함 옆에는 조심스러움이 자리한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는 그 균형이 유난히 편안하다. 서로에게 기대를 강요하지도 않고, 실망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삶을 존중한 채, 같은 방향으로 잠시 나란히 서 있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모임을 유난히 기다린다.


달력 속 작은 메모 하나가 그달의 기준점이 된다.

버거운 일정이 몰려와도 마음속에서는 늘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그날이 있으니까.’

‘그날까지는 괜찮아.’

기대는 그렇게 시간을 견디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미리 떠올리며 현재를 통과하는 방식. 나에게는 꽤 익숙한 생존법이다.

결국 그날이 오고, 그날은 설레임이 현실로 덮어지고, 몰입하는 순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사람들은 따뜻했고,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각자의 근황과 계획을 나누며 웃었고,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문제는 늘 그 다음이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빠르고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은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텅 비었다기보다는, 가득 차 있던 물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느낌. 허전함이라는 말이 가장 가깝지만, 그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이런 감정은 처음이 아니다.

어릴 적 명절이 끝난 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가족여행 후 비행기가 귀국하는 순간들. 다른 사람들은 “좋았어”라는 말로 그 시간을 정리했지만, 나는 늘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운 감정에 붙잡혔다.


나는 아마 기대를 가볍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으로 먼저 채워두고, 그 상상이 현재를 지탱하게 한다. 그 방식은 분명 힘이 되지만, 끝이 날 때는 대가가 따른다.

기대가 쌓일수록, 끝난 뒤에 정리해야 할 감정도 함께 쌓인다.

사라지는 건 단지 한 번의 만남이 아니라, 그 시간을 향해 축적해 온 마음 전체다. 내가 느끼는 허전함은 바로 그 잔여물에 가깝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크게 의미 두지 마.”

“다음이 있잖아.”

“재밌게 보냈으면 됐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순간에만 감정을 쓰고, 지나간 일은 깔끔하게 접으며 효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기다림에 많은 감정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정의 고점도 높고, 내려오는 폭도 크다. 오랫동안 이 성향을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지나감을 힘들어할까, 왜 아쉬움을 쉽게 놓지 못할까. 어른이 되어서는 이런 마음을 꺼내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이 허전함은 '상실'이 아니라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내 안에 제대로 들어왔다는 증거. 대충 지나가지 않았고, 다른 생각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표시.

이번 모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직장이나 평소 나를 괴롭히는 일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온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아무 감정도 남지 않는 만남보다, 이렇게 여운이 남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시간을 제대로 살아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쉽지는 않다.

기대하던 날이 끝난 밤은 조용하고,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다.


하지만 이렇다.

공허함은 끝나서 비어버린 마음이고,

여운은 끝났어도 남아 있는 마음이라고.

이건 부족해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다 채우고 나서 생긴 공간이라고.


나는 앞으로도 아마 이런 사람으로 살 것이다.

기대하고, 깊이 들어가고, 흔들리는 사람으로. 하지만 괜찮다. 이 감정 덕분에 나는 기억을 남기고, 문장을 쓰고, 사람과 시간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다.

깊이 기대하는 사람만이 깊이 허전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세상을 얕게 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도 마음에 여운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당신이 너무 과도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느끼며 사는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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