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결정되어 있지도 않으며, 언제든 내가 채워 나갈 수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까, 아니면 그저 버티고 있는 사람일까.
자존감은 단순한 자신감이나 긍정적 기분이 아니다.
자존감은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내면의 기준선에 가깝다.
미국 심리학자 모리스 로젠버그(Morris Rosenberg)는 자존감을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는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평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지속적’이다.
자존감은 순간의 성취나 실패에 따라 요동치는 감정이 아니라, 그 아래에 깔려 있는 기본값에 가깝다.
이 기본값은 과연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이런 질문을 학습한다고 한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세상은 나에게 안전한 곳인가?’ 양육자나 주변 환경이 실수했을 때도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었는지, 성과가 있을 때만 조건부로 사랑했는지에 따라 아이의 내면에는 서로 다른 메시지가 새겨진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혹은 “나는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구나” 이 메시지는 자라면서 점점 나만의 감각과 태도로 남는다.
그 감각이 바로 자존감이다. 즉, 자존감은 타고난 성격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채우고, 그 경험에 어떤 반응을 하며 살아왔는지의 총합이다.
이렇게 쌓인 과정들에서 결국 자존감은 자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 기준을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다 보니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나’ 자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자존감은 '고정된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존감은 반복되는 해석과 자기 대화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화되거나 수정된다.
새로운 관계와 역할,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할 때 자존감의 기준선 역시 움직인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형성된 자존감을 ‘변경 불가능한 성격’으로 오해하며 그 틀 안에서만 자신을 대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지만, 그 말로 인해 과거의 경험을 현재와 미래까지 묶어두게 될 뿐이다. 자존감은 한 번 만들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경험을 통해 조정되고 반응하며 움직이고 있다.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능력을 결정해서가 아니다. 바로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이고, 실패했을 때 나에게 건네는 나의 언어의 수준이며, 비교 앞에서 무너지느냐, 중심을 지키느냐를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경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했는 가다.
같은 실패를 겪어도 누군가는 그것을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이건 내가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야”이라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와 반응, 그리고 해석의 방향에서 생긴다.
그래서 자존감은 과거에 의해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이야기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경험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선택할 수 있다.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삼을지, ‘의미 있는 데이터’로 남길지. 상처가 ‘나의 정체성’이 될지, '변화의 긍정 에너지’의 기회가 될지,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자존감의 결은 서서히 달라진다.
그래서 자존감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편안해지는 것이다. 당신의 자존감은 이미 만들어졌지만,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다.
경험을 통해, 그리고 나의 태도와 반응, 나의 해석력에 따라 자존감은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자존감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