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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Sep 17. 2023

우울한 민들레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지 뭐


 가끔 영화에서 초능력을 쓰는 주인공들이 온 힘을 다하고 나면 머리가 희게 한다던지 하는 것들이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다. 실제로 스트레스는 멜라닌세포를 감소시켜 흰머리가 늘어난다는 학술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큰 일을 겪고 난 사람들은 흰머리는 기본이고 주름도 늘고, 얼굴이 퀭해지는 압축적 노화를 겪는다.


 외모의 변화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심리적 컨디션의 파동일 것이다. 심혈을 기울이던 목표가 달성되면 오롯이 한 방향으로 치우치던 의식은 쉽게 방향을 상실한다. 생산적인 목적을 가진 일을 달성할 때에는 그 뒤에 오는 피로감조차 뭉근한 것이지만, 인생의 전환점에서 치르는 심리적 전투는 기분 나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이다.

 나는 꽤 전투적으로 이혼의 과정을 잘 겪어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소요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데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에너지를 채우는 데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지난 2주 남짓한 시간을 여행과 휴식으로 보냈다. 무엇보다 무기력함이 급습했기 때문에 하염없이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유야무야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여름이 저무는, 휴가철이 막 끝난 바닷가에서 질릴 만큼 바다를 보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만끽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사장의 감촉은 확실히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었지만 여전히 마음속 블루는 남아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사적 무기력이다. 이혼 과정 내내 심리적 고갈 상태에 이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실제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엄청난 피로감이 남는다. 자도 자도 피곤했고, 변화된 삶에 대한 적응은 또 다른 압박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 계획적이지 않던 내 삶에 중단기 목표 정도는 새로 수립해야 했고, 생활환경을 갈아엎어야 할 큰 변화이기도 했으니까.


 마치 끝도 보이지 않는 아슬아슬한 계단의 마지막 칸까지 오른 느낌이다. 모든 힘을 다 짜내어 목적을 이루고 난 후 밀려들 무기력과 허무함을 예상하면서도 더 이상 늪에 빠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채근하기도 했다. 사실 살면서 이런 비슷한 상태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것이 관계의 끝 같은 상실이 아니더라도, 취업이나 입학 같은 사회적인 목표라던가 혹은 회사에서 진행하던 큰 프로젝트 등에서도 자연스레 수반되던 감정 곡선이기도 하다.


 오로지 목표를 향해 나 자신을 소진하고 난 후 찾아오는 약간의 허무함과 무기력증. 아마도 이것은 일종의 정서적 탈진 증상일 것이다. 특히나 나는 성향상 무슨 일이건 전투적인 탓에 이러한 증상이 때때로 찾아온다.

 무기력함은 우울감을 동반한다. 재충전을 위해 쉼을 선택했음에도 문득 떠오르는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게 시간을 보내게 될 때도 있다. 몸은 쉬는데 머리는 여전히 돌아가는 느낌은 불편하다. 차라리 이럴 거면 책이나 더 읽자는 생각에 이리저리 독서 목록을 뒤적여도, 몇 페이지 이상 진도가 나아가질 않는 걸 보니 이것도 아니다 싶었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예전 같았으면 할 일을 찾아 어떻게든 무력감을 떨쳐버리려고 했을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에너지 넘치는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일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이 기분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이 기회에 잉여시간을 잉여답게 보내보는 것이다. 나는 나를 조금 덜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꽤 많이 바뀌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하루에 5분 정도 짧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짧게 읽으며 힘을 내보는 중이다. 그중에서 매트 헤이그의 <위로의 책>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나무는 나무'라는 챕터가 있다. 그 어떤 문장 보다 이 챕터명이 마음에 든다. 예전에 상담선생님이 추천했던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동화의 또 다른 이름 같다.

 게슈탈트 이론을 비유적으로 적절하게 잘 표현한 이 동화는 민들레를 통해 '나는 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이건, 싹이 터도, 잎이 나도, 혼자여도 혹은 무리 속에 있어도, 씨앗이 되어 날아가도 민들레는 그저 민들레다. 지금 이렇게 내 속에 침잠한 채 웅크리고 있어도 나는 나일뿐이다. 그러니 이런 무기력을 미워하지 말고, 새순이 나기 위해 내적인 성장통을 겪는 단계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타이틀 이미지

ⓒ Kubistika , 출처 icanv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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