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껏 배려받고 오겠습니다
그동안의 여행 준비는 공항에 일찍 도착해 공항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라운지마다 다 들러보고, 여기저기서 사진 찍으며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을 마음껏 누리는 거였다면, 이번엔 조금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애 손을 잡고 갈 준비대신 휠체어 예약을 확인하고, 짐을 최대한 줄이고, 라운지보단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위치를 먼저 체크한다.
목발 짚고 떠나는 여행이라니, 여행의 준비부터 전혀 다른 경험이다.
목발 짚고 다녀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침대에서 주방까지의 거리가 이렇게 멀었나 싶고,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작전 짜듯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상태로 미국까지 간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웃겼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국에서 최대한 배려받고 와야지!
(내가 언제 또 휠체어 타고 미국을 가보겠냐고!)
다쳐보니 보이는 동선의 중요성
평소엔 전혀 몰랐다.
계단 하나, 화장실 위치 하나, 경사 있는 길까지
멀쩡한 다리로 걸을 땐 신경도 안 썼는데
이제는 작은 이동도 미리 체크해야 마음이 놓인다.
평범했던 나의 세상이 갑자기 온통 동선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공항 지도는 이미 나의 필수템이 되었다.
휠체어 서비스 신청, 내가 이런 걸 해보다니
가장 먼저 확인한 건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휠체어 서비스였다.
전화 걸면서 이런 거 부탁해도 되는 건가 생각하며
처음엔 약간 민망하고 어색했는데
상담사분의 너무나 친절한 말투에 긴장이 풀렸다.
“걱정 마시고 편하게 오세요. 다 도와드립니다.”
순간 생각했다.
‘아, 이런 게 또 다친 사람의 특권인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제대로 도움받아야지 싶었다.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ㅋㅋ
수화물 2개 + 백팩 하나, 짐도 줄이고 마음도 줄이고
원래는 수화물 캐리어 2개 + 기내용 캐리어 1개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양손에 목발을 잡고 있어
기내용 캐리어는 절대 불가능한 상태.
결국 수화물 캐리어 2개만 보내고
내 손에 남은 건 딱 백팩 하나.
짐을 줄이다 보니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런 식의 여행 준비는 처음이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다는 생각도 든다.
(반강제로 미니멀리스트 여행^^;;)
시카고 공항 서비스까지 미리 체크!
미국 도착하면 또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카고 공항에서도
휠체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입국심사 절차와 이동 경로까지 꼼꼼히 미리 체크했다.
영문 진단서까지 준비 완료
혹시 미국에서 추가로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영어로 된 진단서도 챙겼다.
진단서에 쓰여 있는 영어 단어를 보며 혼자 웃었다
살다 보니 별 걸 다 해본다.
뜻밖의 ‘럭셔리(?)’ 여행 출발 준비 완료!
다친 건 물론 좋지 않지만,
덕분에 알게 되고 배우는 것도 참 많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배려를 마음껏 누리고 오려한다.
휠체어 타고, 짐도 가볍게,
배려받는 여행이라니!
이런 경험도 평생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