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욕구 극복 일지 : 6일 차
기온이 좀 떨어져서 35도라는데 어쩐지 덥지 않은 느낌이다. 불가마에서 황토방 정도로 옮겨간 것 같달까.
여름을 좋아한다. 뜨겁게 살을 누르는 것 같은 태양의 열기를 사랑한다. 땀이 잘 나지 않는 소음인에게 여름은 피가 돌고 살이 내리는 계절이다. 그러나 39도로 치솟는 폭염까지 품기엔 역부족.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기온은 어느 누구도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이럴 때 좋은 점은 쇼핑할 의욕마저 사라져 버린다는 것. 유일하게 남는 것은 식욕뿐. 평범한 사람들은 먹을 힘도 없다는데 태음인 같은 소음인은 더우면 더운 대로 더위를 날릴 음식이 떠오른다. 다행히 뭘 사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쇼핑 욕구 자체가 생기지 않으니 오늘 하루는 수월하게 지나갈 것 같다.
더위에 조심해야 할 건 체중조절이다. 매일 맥주를 마시느라 뱃살이 어마어마해졌는데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옷을 사지 않고 지내려면 몸에 변화가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몸의 사이즈가 바뀌면 결국 옷을 새로 사야 한다.
소박하게 먹고 소박한 삶을 사는 것. 꼭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도 모자라는 듯 먹고 많이 움직여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게 환경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안다. 알지만, 술의 유혹을 참지 못하겠다. 특히 요즘처럼 더울 때는 갈증을 해소하는데 맥주만 한 것이 없다.
인공적인 단맛이 주는 텁텁함이 싫어서 탄산음료를 거의 안 마시지만 맥주는 예외다. 달지 않아서 괜찮은 건가? 탄산음료의 탄산과는 다른 그 밀도 높은 쫀쫀한 탄산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셔츠를 찢으며 "여름아 가라!"라고 외칠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술만 안 마셔도 뱃살이 빠진다던데. 살이 찌면 결국 옷을 새로 사야 하는데. 고민은 깊어지지만 오늘도 나는 맥주캔을 냉장고에 쟁여 넣는다.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이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과연 나는 옷을 사지 않을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만약 살이 더 찐다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무더위 때문이지 결코 옷을 사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 맞지 않는 꼭 끼는 옷을 입고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관리해야 하는데, 일단 오늘까지만 마시고 생각을 좀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