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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신해철, 노력, 싱어게인

그래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공정을 외치는 겁니다.

요사이 뉴스 보면서 신해철이 많이 생각납니다. 마왕이라면 방송 나와서 뭐라고 했을까. 마왕이라면 트위터에 뭐라고 썼을까. 그러다 우연히 본 "싱어게인"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97년생 3명이 마왕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쓰는 글입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냐구요. 제가 90년대생 이야기하면서 386 선배님들 x세대 형님 누님들 엄청 들이받았거든요. 죄송한 마음을 담아 그분들께 올리는 글이라서 그래요.


저는 80년대 초반 생입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90년대생들을 아주 많이 만났어요. 고등학교에서 만난 수백 명의 제자님들이 고맙게도 친구 추가를 해 주어서 그 녀석들이 어떻게 대학 생활을 하고, 어떻게 구직과 취직을 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 전에는 영어학원에서 대학생들과 취준생들을 가르치면서 매일 그 친구들의 취업전선을 느낄 수 있었지요.


https://tv.naver.com/v/17388923?fbclid=IwAR3dH0Q2LEGFyi5YryArkBmRPGW7KB6pokBPBznKOImTChg2-aT9IoT17Xw

(올린 영상 재생해서 보아주세요. 시간 되시면 자동재생되는 다음 영상도 같이 보아주세요.)


영상 올린 이 무대는 평범한 90년대생 젊은이들의 모습 그대로라고 보시면 돼요. 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잘해요. 정말 잘합니다. 베테랑 제작자인 유희열이 설명을 해줘요. 연습량이 엄청나다, 작은 실수만 해도 깨지는 무대인데, 너무나 잘 해냈다. 저번 무대가 생각이 안 날 정도다. 스스로를 이겨냈다.  


30년 전 신해철의 대학가요제 무대와 비교해 봐도 얘네들이 더 잘하는 거 같아요. 근데, 얘네는 여기서 이름 없는 숫자들이에요. 23호는 최예근이라는 친군데, k팝스타 시즌2에 나와 어느 정도 주목을 받았고, 소속사 계약도 했지만 소속사가 많이 못 밀어줬대요. 32호 남자 두 명은 97년 4월 15일생 같은 날에 태어난 친구라서 "사이로"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 중이래요. 저도 처음 들었어요. 실력도 있고, 노력도 했고, 활동도 했지만, 아마 다들 저처럼 처음 들어볼 거예요. 지금은 그냥 23호, 32호인 거죠.


그런 친구들이 프로그램의 룰에 맞춰 뼈를 깎아 무대를 만들었어요. 이 영상 바로 다음에 재생되는 심사평 영상을 보시면 88년생 규현과 93년생 송민호 심사위원이 평을 하다가 울어버립니다. NG가 아닌가 할 정도로 코마시면서 울어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음악을 이렇게 해내지 못할 것 같다."

"행복한 무대인데 가슴이, 좀, 되게, 이상하다."


슈퍼주니어 출신 규현과 위너 출신 송민호 눈에는 보이는 거죠. 저 절박함이. "아마 안 될 거지만" 그래도 주어진 룰에 순응해서 최선을 다한, 빽 없는 무명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이 친구들과 또 다른 또래 팀 둘 중 하나를 떨어뜨려야 하는 순간에, 64년생 레전드 이선희는 아무 말이 없고, 62년생 김종진은 "난처하다"라고 웃고, 92년생 원더걸스 선미는 그런 김종진에게 "우리 잘못이다!"라고 쏘아붙입니다. 79년생 김이나, 85년생 이해리는 말이 없고요.


저는 23호와 32호의 무대 마지막 장면에서 심사위원들을 향한 그들의 웃음에 제 제자들이 면접 준비하던 얼굴이 겹쳤습니다. 똑같더라구요, 그 억지 미소. 무서워도 안무서운 척, 싫어도 안 싫은 척, 답답해도 안 답답한 척,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으니 혹시 날 잘 보아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한가득 담은 그 절절한 억지 미소.


30년 전에 이 노래로 혜성같이 등장한 신해철은 쌩목으로 신나게 기타 치며 노래 불러서 대스타가 되었어요. 2020년에 같은 노래를 부른 23호와 32호는, 제가 보기에 신해철보다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한 90년대생 3명은, 여전히 막막해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도 우승자가 대충 정해져 있을 것이고, 아마 23호와 32호는 아닐 거예요.


그래서  시대의 젊은이들이 공정을 외치는 겁니다. 노력은 정말  만큼 했으니까요.   있는   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공정하다는 사회에 나와 보니, 노력으로는 넘을  없는 벽이 너무 많은 거에요.


나는 학교 다니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서 최저시급 받아서 학자금 대출 메꿨는데, 쟤는 아버지 친구 연구실에서 무급으로 인턴을 하고 이력서에 빛나는  줄을 넣었어요. 인스타에서  누군가는 해외 국제기구 본부에서 인턴을 했대요. 나는 거기  비행기표 값도 모으기 힘든데. 근데 이력서 넣을 때는 걔나 나나 똑같은 x 지원자예요. 눈높이 낮춰서 중소기업 가려하니, 인터넷에 수많은 사람들이 10년도  다니고 짤려서 기술 배워서 타일이나 이삿짐 해야 한대요.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을 중고딩들도 알아요. 그러니 9 공무원 시험에 그렇게 사람이 몰리죠. 고용안정이라도 보장되니까.  속도 모르고 58년생 한비야는 공무원 준비생은 꿈이 없다며 정신 차리라고 때렸대요.


대기업 문이 좁으면 스타트업 창업하면 되는 거 아니냐구요? 요즘 스타트업 잘 나가려면 아이비리그 mba정도는 해야 해요. 카카오나 네이버 출신이거나. 그래야 투자받죠. 단편적인 얘기라구요? 옛날과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 네이티브 세대랍니다. 이런 얘기들은 집단지성으로 실시간 공유돼요.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공정을 간절히 원해요. 노력을 많이 한 젊은이들일수록 공정하게 평가받기를 원해요. 허황된 희망도 아닌 것이, 그 90년대생들의 부모세대가 민주주의를 쟁취해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었다고 엄청 생색을 냈거든요. 그 부모 밑에서 노력하며 자라서 그 부모가 말해준 세상으로 뛰어나온 젊은이들 눈앞에 노력으로는 넘지 못하는 공정하지 못한 신분과 스펙의 벽이 높이 서 있는 거예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잖아요. 정유라의 불공정한 삶에 분노하던 당시 20대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저 말에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대스타 조국의 딸도 꽤나 특혜를 받은 사실이 밝혀진 거죠. 검찰이 억지로 갖다 붙이는 "표장장 위조 혐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조국의 딸도 돈걱정 없이 방배동에서 아버지 인맥으로 인턴 하면서 스펙 쌓은 걸 말하는 거예요. 가붕개도 행복하게 사는 세상 만들자던 입바른 잘생긴 리더가 본인 딸도 그렇게 의전원 보냈다는 걸 아는 순간, 젊은이들 눈에는 최순실이나 조국이나 다 똑같은 것들이 되는 겁니다. 아니, 더 나쁘죠. 최소한 박근혜 최순실은 공정한 세상을 표방하지는 않았잖아요.


조중동이 신나게 보도하는 "서울대 커뮤니티"의 안티 조국 분위기는 확실히 양념이 많이 들어갔어요. 요즘 서울대 신입생 반이 강남 키즈이기도 하려니와, 자주 언급되는 "스누라이프"가 서울대생 전체를 대변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보도되지 않는 20대 장삼이사들, 인구절벽으로 인해 보팅 파워조차 부족한 취준생 젊은이들의 분노는 분명 주목하실 필요가 있어요. 지금 여당이 거대악을 척결한다는 명분을 아무리 들이밀어도, 그들에게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진보나 보수나,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다들 정의롭지 못한 위선자 꼰대들로 보이는 거예요. 애들이 철이 없어서 민주당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이 시대의 애들이야말로 화염병 시대 대학생들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훨씬 철든 아이들이에요. 민주당의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메시지와 현실의 괴리감에 배신감을 느끼는 거예요.


직장에서 제 또래 차부장들이 그렇대요. 정년 앞두신 선배들은 요즘애들 왜 저러냐고 화를 내시고, 바늘귀 뚫고 들어온 요즘애들은 권리주장만 하고, 중간에 끼인 저희들이 양쪽을 이해하니 서로 설득하다가 양쪽에서 욕먹고 지쳐 포기한다고 합니다. 386은 군바리들과 치열하게 싸워 민주주의 직선제를 쟁취해 냈잖아요. 386의 자식들은 불공정과 치열하게 싸워 일자리를 쟁취해 냈어요. 생색낼만 한거죠.


스펙과 취업난으로 좌절하던 젊은이들은 이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 10억을 보고 폭발 직전입니다. 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문제거든요. 윤석열이 어쩌고 조중동이 어쩌고 들리지도 않아요. 이대생들이 정유라 파헤쳐서 공개한 이후로 박근혜 탄핵까지 일사천리였죠. 90년대생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현 정권도 빠르게 어려워질 겁니다. 이건 문재인과 민주당뿐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기성세대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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