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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어렵다. (1/5)

(1) 영어는 어려워서 어렵다.

영어는 어려워요.

시중에 영어가 쉽다고 광고하는 상품들 많죠? 다 거짓말이에요.


생각해 보자구요. 영어가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생을 하고, 한국에서 영어학원 비싼 거 다니고 영어몰입교육 받은 친구들이 미국 대학 가서 왜 의사소통을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수모를 당하고 살겠어요?


영어가 다른 언어들에 비해서 규칙이 느슨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영어도 세상 모든 것을 다 이름 짓고, 설명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언어들 만큼 어려워요. 영어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쉽게, 며칠 만에, 입이 뚫리고 귀가 트인다는 건 마케팅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상하게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특히 어려워한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만나서 영어 이야기를 나눠본 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어요.


"저 영어 하나도 몰라요."

"중학생 수준이에요."

"저 영어 어떡하죠?"


동남아시아 관광 가보신 분들 아마도 느끼셨을 텐데요. 지레짐작이지만 사교육이나 몰입교육 같은 거 딱히 받아본 적 없어 보이는 현지인 분들이 기초적인 영어 대화는 웃으며 쉽게 하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유럽인들이야 같은 알파벳 문화권이니 그렇다 쳐도,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낮은, 지레짐작이지만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보다 영어교육을 받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을 것 같은 동남아시아 관광지 현지인들이 우리보다 영어를 편하게 쓴다는 것은 의미 있는 고민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아, 그 사람들이 하는 영어는 브로큰 잉글리시고 발음도 이상하다구요? 그 사람들은 그 영어로 먹고 사는걸요! 

어찌 되었든 외국인과 영어로 말이 통하고, 의사소통이 되고,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해서 가족을 부양하는걸요! 우리처럼 부끄러워하고, "어..." 하면서 말 못 하고, 상황 회피해 버리면 금방 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꿋꿋이 사업을 영위하는걸요!



여기에서, '어렵다'라는 단어를 한번 더 생각해 보기로 해요. 우리말의 '어렵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문제나 시험의 난이도가 높을 때도 '어렵다'라는 단어를 쓰지만, 사람이 어려울 때도 '어렵다'는 단어를 써요.


전자의 뜻을 표준 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설명해요.

1. 하기가 까다로워 힘에 겹다.
예) 어려운 수술.

2. 겪게 되는 곤란이나 시련이 많다.
예)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청소년기를 어렵게 지냈다.

3. 말이나 글이 이해하기에 까다롭다.
예) 선생님의 소설은 모두들 어렵다고 합니다.


후자의 뜻을 표준 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설명해요.

상대가 되는 사람이 거리감이 있어 행동하기가 조심스럽고 거북하다.
예) 그 어려운 분한테 자기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아씨에겐 더 믿기지가 않았다.


저는 우리 한국인들이 영어를 '어려워'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어려움'이라고 생각해요.

영어가 '하기가 까다로워 힘에 겹고', '겪게 되는 곤란이나 시련이 많고', '말이나 글이 이해하기에 까다로운' 이유는 바로, '거리감이 있어 행동하기가 조심스럽고 거북하기' 때문이에요.


이미지: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중


많은 한국인들에게 영어란, 돌쇠가 짝사랑하는 양반집 규수같은 존재예요. 그저 좋아 보이고, 빛나 보이고, 나에게 큰 도움도 될 것 같고, 반짝이고 예뻐서 내 마음이 가지만, 그 앞에만 서면 내가 뭘 잘못하지는 않나, 내가 너무 부족하지는 않은가, 내가 이래도 되나 조심스럽고 거북해요. 그러다 보니 영어 앞에서 나 혼자 자꾸 힘들고, 까다롭고, 곤란해요. 그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영어 그 자체가 힘들고 까다로운 존재가 돼요. 

그래도 좋아하니까 용기를 내어 두 번, 세 번 도전하는 데도 자꾸 영어가 나를 민망하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면 짝사랑도 금방 식어버릴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자꾸 영어와 함께하라고 부추기니 괴롭죠. 마음에서는 떠났는데, 실패한 짝사랑인데, 사회생활하는 동안 매일같이 영어 얘기가 들려요. 직장인은 영어랑 꼭 함께 해야 된대요. 영어 잘 해야 연봉 오른대요. 영어 못하면 뒤쳐진대요. 답답하죠.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삼을만한 건 나 혼자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많이들 그래요. 정말 많이.


다음 글에서는 영어가 왜 조심스럽고 거북해졌는지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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